- 주소
- 충청남도 청양군 목면 화양리 806 칠갑광장
- 탐방로그
- 본래 이 곳에 설치되었던 (1973년 제작) 최익현 선생의 동상은 높이 4미터의, 시멘트로 만든 동상이었다. 면암 선생의 위패가 봉안되어있는 모덕사에 2013년 5월에 이전되었다. 현재 건립된 좌상은 청동으로 새로 제작한 것이다. 시멘트로 만들었던 최익현 선생 좌상의 전경도 함께 담았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勉菴 崔益鉉 先生 像(면암 최익현 선생 상)
면암(勉菴) 동상 앞에서 - 지선 최만희
칠갑산 능선 공원에 산바람 충의 향기 솔솔한데 면암 선생은 좌대 높이 앉아 동해를 건너 보신다.
한 맺힌 조국의 깃발로 살아 숨쉬며 지금도 밤낮없이 저 창공을 노엽게 주시하심이여!
마지막 피를 토하며 외치신 말씀 "어찌 원수의 밥을 먹고 더 살기를 바라랴" 먹구름을 찢는 님의 그 절규 비바람에 씻기며 굽이굽이 아득한데
숨가쁜 역사들이 철없이 저버릴까 두려워 산새도 나도 목 놓아 울었습니다.
솔, 솔잎마다 천 년 한을 매달고 여기 의연히 앉아 홀로 저어 가는 자유여, 평화여.
1946. 청양 남양 출생
월간 한국시 등단 호서문학 동인
한국자연공원협회 칠갑산지회 세움
칠갑산 능선 공원에 산바람 충의 향기 솔솔한데 면암 선생은 좌대 높이 앉아 동해를 건너 보신다.
한 맺힌 조국의 깃발로 살아 숨쉬며 지금도 밤낮없이 저 창공을 노엽게 주시하심이여!
마지막 피를 토하며 외치신 말씀 "어찌 원수의 밥을 먹고 더 살기를 바라랴" 먹구름을 찢는 님의 그 절규 비바람에 씻기며 굽이굽이 아득한데
숨가쁜 역사들이 철없이 저버릴까 두려워 산새도 나도 목 놓아 울었습니다.
솔, 솔잎마다 천 년 한을 매달고 여기 의연히 앉아 홀로 저어 가는 자유여, 평화여.
1946. 청양 남양 출생
월간 한국시 등단 호서문학 동인
한국자연공원협회 칠갑산지회 세움
면암 최익현 선생(勉菴 崔益鉉, 1833~1906)
1973년 선생의 忠義(충의)를 기리고 愛國(애국) 사상을 마음에 새기고자 군민들으 모금으로 칠갑산도립공원에 건립하였던 시멘트 동상을 2013년 5월 勉菴(면암) 선생의 位牌(위패)가 봉안되어 있는 慕德祠(모덕사)에 이전하고 청동으로 제작한 새로운 像(상)을 이 자리에 세웁니다.
서기 2013년 5월 靑陽郡守(청양군수)
1973년 선생의 忠義(충의)를 기리고 愛國(애국) 사상을 마음에 새기고자 군민들으 모금으로 칠갑산도립공원에 건립하였던 시멘트 동상을 2013년 5월 勉菴(면암) 선생의 位牌(위패)가 봉안되어 있는 慕德祠(모덕사)에 이전하고 청동으로 제작한 새로운 像(상)을 이 자리에 세웁니다.
서기 2013년 5월 靑陽郡守(청양군수)
면암 최익현 선생 약전
선생의 성은 최 휘는 익현 자는 찬겸 겸호는 면암이시니 라말 거유 최치원 선생의 후예이시다. 1833년 경기도 포천에서 출생하시고 화서 이항로 선생의 문인으로서 23세에 명경 문과에 급제하였을 때 이 마을 위국충절의 높은 지조를 굳게 다짐하였다. 사헌부 장령시 세도정치의 비판 상소로 언관의 의혼을 떨쳤으며 1876년 도끼를 메고 광화문 앞에서 평등치 못한 조일 수호조약을 반대하여 올린 척화상소 1905년 5조약 발기와 오적 참륙을 주장하신 자강 분노 상소 등 30여회의 애국충정에서 울어나온 상소문들은 자자구구마다 천신도 감읍케 하였다. 드디어 이 나라 천지가 바뀌고 역사도 닫히려 할때 일제의 침략상을 파헤친 16개조 토죄문을 퍼서 외적의 간담을 서늘케 하였고 동포여 애국 앞에 함께 싸워죽자는 피끓는 포고문을 전국 사민에게 뿌리신 다음 1906년 4월 호남 태인에서 항일의기를 꽂으셨다. 수개월간 혈맹으로 불어난 800의군을 이끌고 전라 일원을 누비시던 중 애닯다 의가 따르고 인에 넘치시던 선생은 항쟁 끝에 왜적의 포박을 받어 대마도에서 아사순국하시니 향년 74세였다. 1962년 우리 정부는 건국공로훈장 중장 제1호를 추서하였다. 이곳 청양 땅은 만년에 사시던 유택과 영혼을 모신 사자가 함께 계시는 곳이 유서깊은 칠갑산 마루에 충혼어린 선생의 위의가 계시니 이곳을 지나는 겨레들이여 다시 한 번 이 나라 역사의 자주를 위하여 겨레의 영원할 명운을 빌자.
서기 1973년 10월 30일
후학여흥 민병기 근찬 후학여흥 민태식 근액 후학안동 김응현 근서
선생의 성은 최 휘는 익현 자는 찬겸 겸호는 면암이시니 라말 거유 최치원 선생의 후예이시다. 1833년 경기도 포천에서 출생하시고 화서 이항로 선생의 문인으로서 23세에 명경 문과에 급제하였을 때 이 마을 위국충절의 높은 지조를 굳게 다짐하였다. 사헌부 장령시 세도정치의 비판 상소로 언관의 의혼을 떨쳤으며 1876년 도끼를 메고 광화문 앞에서 평등치 못한 조일 수호조약을 반대하여 올린 척화상소 1905년 5조약 발기와 오적 참륙을 주장하신 자강 분노 상소 등 30여회의 애국충정에서 울어나온 상소문들은 자자구구마다 천신도 감읍케 하였다. 드디어 이 나라 천지가 바뀌고 역사도 닫히려 할때 일제의 침략상을 파헤친 16개조 토죄문을 퍼서 외적의 간담을 서늘케 하였고 동포여 애국 앞에 함께 싸워죽자는 피끓는 포고문을 전국 사민에게 뿌리신 다음 1906년 4월 호남 태인에서 항일의기를 꽂으셨다. 수개월간 혈맹으로 불어난 800의군을 이끌고 전라 일원을 누비시던 중 애닯다 의가 따르고 인에 넘치시던 선생은 항쟁 끝에 왜적의 포박을 받어 대마도에서 아사순국하시니 향년 74세였다. 1962년 우리 정부는 건국공로훈장 중장 제1호를 추서하였다. 이곳 청양 땅은 만년에 사시던 유택과 영혼을 모신 사자가 함께 계시는 곳이 유서깊은 칠갑산 마루에 충혼어린 선생의 위의가 계시니 이곳을 지나는 겨레들이여 다시 한 번 이 나라 역사의 자주를 위하여 겨레의 영원할 명운을 빌자.
서기 1973년 10월 30일
후학여흥 민병기 근찬 후학여흥 민태식 근액 후학안동 김응현 근서
이전하기 전 시멘트 좌상이 있었던 칠갑광장의 모습
이전하기 전 시멘트 좌상이 있었던 칠갑광장의 모습
이전하기 전 시멘트 좌상이 있었던 칠갑광장의 모습
청양군 정산면 마치리 523-6 칠갑산 칠갑광장을 찾았다.
오래된 좌상이 모덕사로 이동되고, 새롭게 건립되었다고 한다.
오래된 좌상이 모덕사로 이동되고, 새롭게 건립되었다고 한다.
七甲廣場(칠갑광장)
勉菴 崔益鉉 先生 像(면암 최익현 선생 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