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 덕진동 1314-4
- 탐방로그
- 동학농민혁명의 삼걸 중 한 분이신 전봉준 선생의 상이다. 덕진공원에 손화중 장군상, 김개남 장군 추모비 곁에 함께 세워져있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포악무도한 고부군수 조병갑을 징치하고자 정익서 김도삼등 1천여명으로 관아를 공격하니 이것이 1894년 정월 10일의 갑오혁명이었다. 그뒤 백산호남창의소에서 손화중 김개남 김덕명등과 일만여명으로 남도를 휩쓸고 전주에 입성 성상의 윤유로 반봉건 민주혁명을 성취한 전주화약이 우리어지니 집강소를 전도에 두고 민주서정을 펴갈무렵 왜적이 국권을 단○하여 위망이 경각에 이르므로 분연히 21만여명의 호남 호서 구국창의군을 이끌고 축멸왜귀 보국안민의 정전에서 역투하였으나
왜군의 정예병에 밀려 충청 전라의 산야를 피로 물들이고 이듬해 3월 형장의 이슬이 되니 형년 43세이었다. 선생은 갔으나 그의 거룩한 위국 단침은 겨레의 핏속에 영원히 살아 나라를 하는 길을 일꺠워 줄것이다. 한국청년회의소 제30차 전국회원대회를 기념하여 회원들이 정성을 모아 동상을 세워 도민에게 드린다.
서기1981년 10월 3일
서기1981년 10월 3일
전봉준 선생상
전봉준 선생 추념기
백성은 하늘이라 옛부터 천명의 조짐이 민의에 비치었으으로 성군은 창생의 소망을 헤아려 치국의 도를 삼아온 것이다. 저 조선말엽에 왜적이 참람히 사직을 넘보고 빈학한 간신들은 성총을 가린채 가렴주구만을 일삼으니 종사는 뿌리채 뽑히고 생민은 도찬에 헤매었다. 이때에 하늘이 낸 구국치민의 지도자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녹두장군 전봉준 선생이었다. 선생의 초명은 영준 호는 해몽 본관은 천안 창혁의 아들로 정읍군 이평면 장안리에서 훈장을 하던 향반이었는데 평소 치세의 뜻이 있었던바
백성은 하늘이라 옛부터 천명의 조짐이 민의에 비치었으으로 성군은 창생의 소망을 헤아려 치국의 도를 삼아온 것이다. 저 조선말엽에 왜적이 참람히 사직을 넘보고 빈학한 간신들은 성총을 가린채 가렴주구만을 일삼으니 종사는 뿌리채 뽑히고 생민은 도찬에 헤매었다. 이때에 하늘이 낸 구국치민의 지도자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녹두장군 전봉준 선생이었다. 선생의 초명은 영준 호는 해몽 본관은 천안 창혁의 아들로 정읍군 이평면 장안리에서 훈장을 하던 향반이었는데 평소 치세의 뜻이 있었던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