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광순 순절지(연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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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피아골로 774
탐방로그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피아골로 연곡사에 위치한 연곡사 내 고광순 의병장 순국지이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의병장 고광순 순절비(義兵將 高光洵 殉節碑)
구한말 의병대장 녹천(鹿川) 고광순 의사는 1858년(헌종14)에 창평고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나라가 망국의 조짐을 보이자 관직에 나가지 않고 항일의병의 길을 택했는데 1905년 을사늑약 체결 후에는 '호남의병대장'이 되어 '남원.광주.화순.순천' 등지에서 자신이 제작한 '불원복기(태극기에 광복이 머지 않음을 표시한 깃발)'을 앞세우고 일본군에 맞서 싸우다 행세가 불리해지자 이곳 연곡사에 들어와 유격전을 펴다가 일본 군경에 포위되어 집중포화를 받고 1907년 음력 9월 11일 장렬히 순국하였다. 훗날 구례군민들이 뜻을 모아 돌아가신 자리에 순절비를 세웠으며, 공의 순국 100주년인 2007년 구례군에서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단장하였다.
현각선사탑비 / 소요대사탑 / 의병장 고광순 순절비
不遠復(불원복)
고광순 의병장 순국지
3.1운동 100주년 기념
不遠復(불원복)
고광순 의병장 순국지
3.1운동 100주년 기념
전남 구례 일대에서
활약하던 의병장
고광순이 사용한
복불원기는 머지않아
국권을 회복한다는
뜻이다.
義兵將 高光洵 殉節碑(의병장 고광순 순절비)
義兵將 高光洵 殉節碑(의병장 고광순 순절비)
고광순 의병장 순국지(연곡사)
관리번호 : 55-1-54 / 관리자 : 대한불교조계종 연곡사 / 소재지 :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피아골로 774
1907년 10월 고광순 의병장이 일본군과 맞서 싸우다가 순국한 곳이다.
고광순(高光洵, 1848~1907)은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고 단발령이 시행되자 1896년 기우만이 이끄는 장성의병에 참가하였다. 1906년 6월 최익현.임병찬 등이 일으킨 태인의병에 참여하려 했으나 태인의병이 해산하면서 뜻을 이루지 못했다. 1907년 2월 양한규 의병과 함께 남원을 점령하고자 하였으나, 양한규 의병이 일본군에 패하면서 수포로 돌아갔다. 1907년 중반 연곡사에 근거지를 두고 지리산에서 장기항전을 벌이기로 계획하였다. 그러나 1907년 10월 17일 일본군의 급습을 받고 치열한 전투를 벌였으나 고광순은 순국하였고 의병도 해산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