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화성리 732-2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애국지사 김준운
애국지사 김준운
일제의 강점으로 조국이 신음할 때 온 국민이 모두 모여 민족자존 지켜내고 자주독립 쟁취 위해 탑골공원 독립선언 요원의 불길처럼 만세운동 봉기할 제 애국지사 김준운과 신녕면민 하나되어 신녕장날 그 광장에 빛살처럼 뻗은 함성 그 정기가 무심찮아 조국광복 이루었네 일깨우신 큰 뜻이 영원무궁 빛나도록 후손들의 가슴속에 길이길이 맥박치리
일제의 강점으로 조국이 신음할 때 온 국민이 모두 모여 민족자존 지켜내고 자주독립 쟁취 위해 탑골공원 독립선언 요원의 불길처럼 만세운동 봉기할 제 애국지사 김준운과 신녕면민 하나되어 신녕장날 그 광장에 빛살처럼 뻗은 함성 그 정기가 무심찮아 조국광복 이루었네 일깨우신 큰 뜻이 영원무궁 빛나도록 후손들의 가슴속에 길이길이 맥박치리
김준운 연보
1855년 9월 5일 의성김씨 귀봉공파 정석의 3남으로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에서 출생. 일찍부터 서당에서 한학 수학
1870년 신녕예수교회 장로
1890년 황일업의 딸 진이와 결혼
1919년 4월 6일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신녕보통학교 생도이던 장남 호용과 황정수, 박칠성, 구위준을 선동하여 신녕장날을 택해 만세운동을 계획하다 사전 체포당함
1920년 징역 1년형 만기 출소
1925년 6월 23일 체포 당시 모진 고문과 혹심한 취조로 인해 출옥 후 5년간 병마에 시달리다 서거
1986년 정부에서 대통령 표창 추서
1990년 정부에서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2002년 7월 19일
영천항일 독립운동 선양사업회에서 세우다
영일후인 정선득 글을 쓰다
1855년 9월 5일 의성김씨 귀봉공파 정석의 3남으로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에서 출생. 일찍부터 서당에서 한학 수학
1870년 신녕예수교회 장로
1890년 황일업의 딸 진이와 결혼
1919년 4월 6일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신녕보통학교 생도이던 장남 호용과 황정수, 박칠성, 구위준을 선동하여 신녕장날을 택해 만세운동을 계획하다 사전 체포당함
1920년 징역 1년형 만기 출소
1925년 6월 23일 체포 당시 모진 고문과 혹심한 취조로 인해 출옥 후 5년간 병마에 시달리다 서거
1986년 정부에서 대통령 표창 추서
1990년 정부에서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2002년 7월 19일
영천항일 독립운동 선양사업회에서 세우다
영일후인 정선득 글을 쓰다
권규섭·김수곡·김준운·한상택·권태용 애국지사 추모비 - 국가보훈처지정 현충시설
◆관리번호 : 33-1-39 / ◆관리자 : 영천항일독립운동선양사업회 / ◆위치 : 영천시 신녕면 화심리 732-1 성환산공원
1906년 3월에 조직된 산남의진에 가담하여 활발한 대일 무장 투쟁을 전개하다가 순국한 권규섭·김수곡 애국지사와 1919년 4월 신녕보통공립학교 만세운동을 조정한 김준운 애국지사. 적 우동맹의 간부로서 학생 항일운동을 주도한 한상택 애국지사, 그리고 일본군 부대를 탈출한 권태용 애국지사의 숭고한 애국 정신을 기리고 이를 후대에 널리 전하기 위하여 영천항일독립 운동선양사업회에서 이 비를 건립하였다.
◆관리번호 : 33-1-39 / ◆관리자 : 영천항일독립운동선양사업회 / ◆위치 : 영천시 신녕면 화심리 732-1 성환산공원
1906년 3월에 조직된 산남의진에 가담하여 활발한 대일 무장 투쟁을 전개하다가 순국한 권규섭·김수곡 애국지사와 1919년 4월 신녕보통공립학교 만세운동을 조정한 김준운 애국지사. 적 우동맹의 간부로서 학생 항일운동을 주도한 한상택 애국지사, 그리고 일본군 부대를 탈출한 권태용 애국지사의 숭고한 애국 정신을 기리고 이를 후대에 널리 전하기 위하여 영천항일독립 운동선양사업회에서 이 비를 건립하였다.
애국지사 김준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