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여성독립유공자 흉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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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방서동 649-1
탐방로그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방서동 649-1에 위치한 충북여성독립유공자 흉상을 찾아왔다. 충북미래여성플라자 내, 충북여성독립운동가 전시실에서 사적을 찾을 수 있었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신순호 지사의 부모님 신건식 지사, 오건해 지사, 남편 박영준 지사 모두 독립운동가 가족이시다.
신순호
1922.1.22 ~ 2009.1.30
건국훈장 애국장(1990) 광복군
신순호(申順浩) (1922~2009)
훈격 건국훈장 애국장(1990)
운동계열 광복군
본적 충북 청원군 가덕면 인차리 132
주요공적
· 아버지 신건식, 어머니 오건해의 장녀로 가덕 인차리에서 출생
· 1926년 3월 고향에서 아버지 얼굴도 모르고 자라다가 4세 되던 해, 어머니 오건해의 등에 업혀 상하이로 가서 가족이 함께 살게 됨.
· 1932년 윤봉길 의거 이후, 임시정부와 함께 고난의 유랑길 (상하이 - 항저우 - 전장 - 창사 - 광저우 - 류저 - 치장 - 충징)을 함께 함
· 1938년 임시정부가 류저우 시기에 창립한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참여하여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가담
· 1940년 9월 한국광복군 창군 때, 여군으로 입대하여 총사령부 근무
· 1942년 부친 신건식과 함께 임시정부 생계위원회 회계부 근무
· 1943년 박영준 [1915~2000, 건국훈장 독립장(1977)]과 결혼
· 신순호·박영준 부부는 해방 후 곧바로 귀국하지 않고 한인 동포 귀국문제의 외교적 처리를 위해 설치한 '주화대표단' 임무를 맡아 마지막까지 교민 귀국 업무를 담당하다 1948년 4월 귀국
· 고향의 가덕중학교에 사재로 '삼강도서관'을 건립 기증
신정숙 지사의 남편이신 장현근 지사께서도 독립유공자이시다.
신정숙
1910.5.12 ~ 1997.7.8
건국훈장 애국장(1990) 광복군
신정숙(申貞淑) (1910~1997)
훈격 건국훈장 애국장(1990)
운동계열 광복군
본적 서울 서대문구 갈현동 366-16
주요공적
· 1910년 평안북도 의주 갑부로 독립운동을 하던 신조준의 딸로 태어남
· 1928년 장현근[1909~1969, 건국훈장 애족장(1990),충북 음성 신천리
출생] 과 결혼. 곧 장현근은 독립운동 관련 잠적
· 1932년 5월 장현근이 상하이에서 안창호와 함께 체포되어 국내로 압송되자
옥바라지, 남편은 집행유예 후 다시 종적을 감춤
· 1938년 남편을 찾아 중국으로 가 한때 구이린에서 [조선의용대]에 참여
· 1939년 충칭으로 가서 김구의 비서로 근무
· 1940년 9월 17일 한국광복군에 입대
· 1941년 3월 1일 한국광복군 징모처 제3분처 위원 및 회계조장으로 활동
· 1942년 10월 한국광복군 제2지대 3구대 3분대에 편성되어 정보선전공작,
포로심문, 정보수집 등 공작활동
박재복
1918.1.28 ~ 1998.7.18
건국훈장 애족장(2000) 국내항일
박재복(朴在福) (1918~1998)
훈격 건군훈장 애족장(2006)
운동계열 국내항일
본적 충북 영동군 심천면 초강리 434
주요공적
· 1918년 빈농 집안에서 태어남
· 1930년 고향에서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가사 일을 도움
· 1934년 ~ 1938년 군시제사 주식회사 대전공장에서 근무
· 1938년 ~ 1941년 대전 본정 2가 양만지梁萬枝 상점점원으로 근무
· 동료 여성 노동자들에게 중일전쟁에서 일본이 패전할 것이라고 수차례에 걸쳐 항일의식을 고취하는 발언을 하다가 체포됨
· 1941년 10월 29일 전주지방법원에서 육군형법위반으로 금고 1년을 선고 받고 전주 교도소에서 옥고를 치름
충북의 독립운동가 가계도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방서동 649-1에 위치한 충북여성독립유공자 흉상을 찾아왔다.
이곳 여성독립운동가 흉상은 처음에 몇 명이냐 등으로 오래전부터 이야기가 나왔었고,
또 코로나로 개관이 연기되는 등 많은 곡절을 겪었었다.
충북
여성독립운동가
전시실
충청북도
조선 독립과 주권을 쟁취한 아름다운 불꽃을 기억합니다.
외세침략과 국권강탈로 이어지는 민족의 위기 앞에서 여성들도 모두 힘을 모았습니다. 1907년 국채보상운동에 금가락지를 내놓았고, 3.1만세운동에 앞장서 독립만세를 외쳤습니다.
항일단체를 만들고 무장항일투쟁에 직접 뛰어들기도 했으며, 독립운동가를 내조하며 보이지 않게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임시헌장3조에서 '대한민국 모든 국민은 남녀귀천 및 빈부계급 등 일체 평등함'을 명시하여 남녀가 국민으로서 똑같은 권리와 의무가 있음을 천명하였습니다. 목숨을 바쳐 싸운 수많은 여성들의 노력이 대한민국을 세웠고, 헌법 제1조에서, '모든 국민은 법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라는 국민적 결의를 만들었습니다.
01 여성의병을 이끌다. 윤희순 02 3.1만세운동을 주도하다. 어윤희,박자혜,이화숙,오건해
03 임시정부 지원과 여성운동에 매진하다. 연미당, 김수현, 이국영

김수현(金秀賢) 1898~1985 중국방면 애족장(2017)
1940년 충칭에서 한국여성혁명동맹 참여
1943년부터 한국독립당 당원으로 활동

이국영(李國英) 1921~1956 임시정부 애족장(1990)
1941년 한국여성혁명동맹 대의원으로 활동
1944년 임시정부 생계부 부원으로 활동
03 임시정부 지원과 여성운동에 매진하다. 이국영, 신창희 04 무장투쟁의 최일선에 서다 신순호 신정숙

신창희(申昌喜) 1906~1990 중국방면 건국포장(2018)
1921년경부터 임시정부 활동지원
1943년부터 해방때까지 한국독립당 당원활동
05 노동현장과 학교에서 항일운동을 잇다. 박재복, 민금봉, 민인숙, 홍금자

민금봉(閔今奉) 1912~1946 학생운동 대통령표창(2019)
1930년 1월 광주학생운동에 시위계획 동참
동월 15일 만세운동 참여로 체포되어 옥고를 치름.

민인숙(閔仁淑) 1912~1975 학생운동 대통령표창(2019)
1930년 1월 15일 광주학생운동 참여
동 시위사건으로 체포되어 구류 20일 받음

홍금자(洪金子) 1923~미상 학생운동 대통령표창(2019)
1930년 1월 15일 광주학생운동 참여
동 시위사건으로 체포되어 구류 20일 받음
윤희순 지사는 춘천으로 출가하여 시아버지 유홍석 지사, 남편 유제원 지사, 아들 유돈상 지사 모두가 애국지사이시다.
윤희순
1860.6.25 ~ 1935.8.1
건국훈장 애족장(1990)
의병
윤희순(尹熙順) (1860~1935)
훈격 건국훈장 애족장(1990)
운동계열 의병
본적 충북 중원군(현 충주) 엄정면 신만리 740
주요공적
· 서울 출생
· 1896년 시아버지 유홍석이 춘천에서 의병 활동에 나서자 의병부대를 지원
· 1907 일본이 구 한국군대를 해산하고 고종을 강제 퇴위시키자 유홍석 등이 다시 의병을 모아 일본군과 전투.
이에 윤희순은 군자금을 모으고 [여성의병단(30명)]을 조직하여,
탄약제조소를 운영하는 한편 남장을 하고 직접 정보수집에 나서기도 함
· [안사람 의병가] 등 8편의 의병가와 4편의 경고문을 제작하여 여성과 청년의 의병참여를 촉구
· 1911년 시아버지, 남편(유제원),세 아들과 함께 중국 만주로 이주하여
[대한독립단]에 가입하는 등 만주지역에서 지속적으로 항일투쟁 전개
서대문감옥 여옥사 8호 감방의 노래

선죽교 피 다리

진중이 일곱이 진흙색 일복 입고
두 무릎 끓고 앉아 주님께 기도할 때
집시 두 개 콩밥덩이 창문열고 던져 줄 때
피 눈물로 기도했네 피 눈물롤 기도했네

대한이 살았다

대한이 살았고 대한이 살았다
산천이 동하고 바다가 끓는다
에헤이 데헤이 에헤이 데헤이
대한이 살았다 대한이 살았다
어윤희
1880.6.20 ~ 1961.11.18
건국훈장 애족장(1995) 3.1운동
어윤희(魚允姬) (1880~1961)
훈격 건국훈장 애족장(1995)
운동계열 3.1운동
본적 경기 개성시 송도면 동삼리 100
주요공적
· 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덕은리 출생
· 1894년 결혼 3일 만에 남편이 동학군으로 집을 떠나 전투 중 전사
· 1897년 아버지마저 사망하자 고향을 떠나 황해도 평산, 해주 등을 떠돌다
1909년 경기도 개성에 정착
· 개성북부교회에서 정춘수 전도사를 만나 설교에 감화되어 기독교에 입문
· 남감리교회가 개성에 세운 미리흠여학교 졸업
· 1919년 2월 28일 자진하여 독립선언서 배포
· 개성지역 3·1만세운동의 도화선이 된 독립선언서 배포로 재판에 회부,
4월 11일 보안법위반으로 1년 6월 형을 선고받음
서대문감옥 투옥 중에도 유관순 등과 비밀통신방법으로 17개 감방동지를
규합하여 1920년 3월1일 '3·1운동 1주년' 투쟁 주도
· 출옥 후 [개성여자교육회],[간회 개성지회]지도 활동
· 1927년 [근우회槿友會 개성지회] 설립의 주역으로 활동
· 해방 후, 개성과 서울 마포에 보육원 설립운영 등 사회복지 사업
박자혜 지사는 단재 신채호 지사의 부인이시기도 하다.
박자혜
1895.12.11 ~ 1943.10.16
건국훈장 애족장(1990) 국내항일
박자혜(朴慈惠) (1895~1943)
훈격 건국훈장 애족장(1990)
운동계열 국내항일
본적 서울 도봉구 수유리 433
주요공적
· 1890년대 견습나인으로 입궁
· 1910년 12월 30일 궁내부 소속 고용원 해직 시, 궁궐을 나와 명신여학교에
입학하여 근대 교육을 받음
· 명신여학교 졸업 후, 사립 조산부양성소를 거쳐 1916~1919초까지
조선총독부 의원 간호부로 근무
· 3·1만세운동 부상자를 치료하고, 조산원과 간호부로 근무하는 한국인 동료를
규합하여 [간우회]를 조직하고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가 체포되어 고초를 겪고 중국 베이징으로 탈출, 연경대학 의예과 입학
· 1920년 이회영 중매로 신채호[1880~1936, 건국훈장 대통령장(1962),
옛 청원군 낭성면]와 결혼, 신채호의 독립운동 지원
· 1924년 큰아들 수범을 데리고 귀국. 독립지사들간 연락, 정보, 편의제공 등 활동을 계속함
· 서울 인사동에 조산소를 개원했으나 가난과 지병으로 49세에 사망
임수명 지사는 신팔균 장군의 부인이시기도 하다.
임수명
1894.2.15 ~ 1924.11.2
건국훈장 애국장(1990) 의열투쟁
임수명(任壽命) (1894~1924)
훈격 건국훈장 애국장(1990)
운동계열 의열투쟁
본적 충북 진천군 이월면 노원리 829
주요공적
· 서울출생
· 1912년 서울에서 간호원으로 근무할 때, 신팔균[1882~1924, 건국훈장
독립장(1963), 충북 진천군]을 만나 1914년 21세에 결혼
· 1914년 신팔균이 베이징으로 망명하고, 임수명은 항일비밀문서의
연락과 배포 등 후방에서 지원
· 1921년 밀명을 띠고 입국한 남편을 따라 아이 셋을 데리고 만주로가서
독립운동을 계속함
· 1924년 7월 2일 신팔균은 독립군 훈련요새지인 랴오닝, 신빈, 왕칭,
이도구에서 일본군에 매수된 중국 마적의 습격으로 전사.
이때 임수명은 신팔균의 전사를 알지 못한 채 주변 동지들의 강한 권유로
귀국하여 종로구 사직동에 거주
· 1924년 11월 2일 남편의 전사 사실을 알고 유복녀와 함께 음독 자결
이화숙 지사의 시아버지 정순만 지사, 남편 정양필 지사 모두 독립운동가의 집안이시다.
이화숙
1893. ~ 1978.
건국훈장 애족장(1995) 임시정부
이화숙(李華淑) (1893~1978)
훈격 건국훈장 애족장(1995)
운동계열 임시정부
본적 서울 상세미상
주요공적
· 1893년 한약방을 경영하는 덕수 이씨집에서 출생. 어릴 때 어머니를 잃고
부친이 미국선교사에게 맡김
· 1910년 이화학당 대학과 입학(입학생 15명)
· 1914년 1회 졸업(졸업생 3명)
· 1919년 9월 [대한애국부인회(상하이)]총회에서 김순애를 이어 회장이 되고,
같은 해 9월 5일 임시정부 국무원 참사로 임명되었으며,
10월 31일 임시정부 선언서 및 공약 3장 발표 때 [대한애국부인회]
회장으로서 민족대표(32명)가 됨
· 1920년 대한적십자회 설립한 간호원양성소 1기 졸업자(9명)로서 자금모금,
독립군 부상자 치료, 간호원 양성, 독립군 가족 생계지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
· 1920년 민단 상의원 활동 중, 김규식과 파리강화회의 참여 차,
뉴욕에 머무는 도중, 독립군 양성에 교육에 힘쓴 정순만 선생의 아들 정양필
[1893~1978, 건국훈장 애족장(1995),옛 청원군 옥산면 덕촌리 185]을 만나 결혼
· 결혼 후 미국에서 거주하며 수차례 독립자금 출연
연미당 지사는 아버지 연병환 지사, 남편 엄항섭 지사 모두 독립운동가 집안이시다.
연미당
1908.7.15 ~ 1981.1.1
건국훈장 애국장(1990) 중국방면
연미당(延薇堂) (1908~1981)
훈격 건국훈장 애족장(1990)
운동계열 중국방면
본적 경기 여주군 금사면 주록리 90
주요공적
· 연병환[1878 ~ 1926, 2008년 대통령표창 추서,괴산(현 증평) 도안석곡 555]의 장녀를 중국 룽징에서 출생
· 1927년 19세에 김구를 보좌하던 엄항섭 [1898~1962,건국훈장 독립장(1989)]과 결혼
· 1931년 23세 [상해한인각단체연합회]에 [상해여자청년동맹]대표로
참가하여 여성독립운동계 공동 항일연합전선 구축 운동 주도
· 1932년 윤봉길 의사의 홍커우공원 의거 때,도시락 폭탄을 보자기에 싸주었다고 전함
· 1938년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 대원으로 선전홍보 활동
· 1943년 [한국애국부인회]재건 시 조직부 주임으로 복무하며 충칭방송에서
항일의식 고취 방송 및 국내외 여성동포의 각성과 분발을 촉구하는 선무 방송 활동
· 1946년 7월 한국광복군 제2지대와 함께 귀국
오건해 지사의 남편 신건식 지사, 따님 신순호 지사 모두 독립운동가 집안이시다.
오건해
1894.2.23 ~ 1963.12.25
건국훈장 애족장(2017) 중국방면
오건해(吳健海) (1894~1963)
훈격 건국훈장 애족장(2017)
운동계열 중국방면
본적 충북 상세미상(청주시 보성 오씨 집성촌 출생 추정)
주요공적
· 1894년 오우석과 홍씨 사이에서 태어남
· 신건식[1889~1963, 건국훈장 독립장(1977),청원 가덕면 인차리 132]과 결혼
· 신건식은 임시정부 재무부원을 거쳐 재무차장으로 재정문제를 책임
· 1926년 딸 신순호를 데리고 남편이 있는 상하이로 건너감
· 임시정부 안살림과 독립운동가 지원에 중요한 역할을 함. 사위 박영준은
"독립운동가치고 오건해 여사의 음식을 먹지 못한 사람은 독립운동가가
아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음식솜씨가 좋고 독립운동가 뒷바라지로 평생을 보낸 분으로 회고함
· 1937년 병약해진 이동녕의 병환 치료, 1938년 일명 '남목청사건'으로 총격당한 김구 선생 간호
· 1940년 박찬익이 화재로 부상당했을 때, 딸 순호와 함께 간호하고 후일 사돈 관계가 됨
· 1940년 [한국혁명여성동맹],1942년 한국독립당 당원으로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