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충청북도 증평군 도안면 석곡리 568-2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친일파 이갑령 저격사건을 수색하던 일본경찰에 체포"
국내로 압송 공주감옥에서 6년간 수형 생활
국내로 압송 공주감옥에서 6년간 수형 생활
"혹독한 감옥살이에도 절개와 투지가 꺾이지 않음"
공주감옥에 투옥되어 생사를 넘나드는 혹독한 체형과 감금의 생활
공주감옥에 투옥되어 생사를 넘나드는 혹독한 체형과 감금의 생활
"그토록 염원하던 조국의 광복"
온 국민과 함께 광복의 기쁨을 누리는 연병호
온 국민과 함께 광복의 기쁨을 누리는 연병호
"게헌 국회의원 활동모습"
제헌국회에서 흰두루마기와 검정고무신을 신은 청빈한 모습의 연병호 선생
제헌국회에서 흰두루마기와 검정고무신을 신은 청빈한 모습의 연병호 선생
선생은 돌아가실 때 고무신과 두루마기 한 벌만 남기셨을 정도로
사리사욕을 버리고 평생 청렴결백한 삶을 살아오셨다.
사리사욕을 버리고 평생 청렴결백한 삶을 살아오셨다.
연병호 항일 기념관
아래에 소개되어있는 청안동헌 만세운동기념비와 모래재 의병격전기념비는
행정구역이 괴산군이어서 괴산군 앨범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충북 괴산군 청안 만세운동유적비, 청안 동헌, 사리면 수암리 모래재의병 격전유적비, 소수 만세운동유적비, 동부리 일완 홍범식 고택, 제월리 홍범식선생 묘, 장연면 오가리 3.1운동7인열사의 비. 김용응, 소수면 수리 김태규 부자 독립운동 공적비, 애국의사 경석조공 공적비, 정운기의사 공적비, 정원택선생 공적비, 수진교앞 옛날 괴산장터 괴산 만세운동유적비, 문방리 독립지사 신강면 기적비, 문당리 애국지사 윤영집사적비
행정구역이 괴산군이어서 괴산군 앨범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충북 괴산군 청안 만세운동유적비, 청안 동헌, 사리면 수암리 모래재의병 격전유적비, 소수 만세운동유적비, 동부리 일완 홍범식 고택, 제월리 홍범식선생 묘, 장연면 오가리 3.1운동7인열사의 비. 김용응, 소수면 수리 김태규 부자 독립운동 공적비, 애국의사 경석조공 공적비, 정운기의사 공적비, 정원택선생 공적비, 수진교앞 옛날 괴산장터 괴산 만세운동유적비, 문방리 독립지사 신강면 기적비, 문당리 애국지사 윤영집사적비
충북 증평군 도안면 석곡리 568-2에 연병호 항일역사공원이 건립되었다고 해서 찾아왔다. 연병환 선생 공적비가 있던 자리에 연병호 항일 기념관 및 상징 조형물 등이 추가 건립되었다고 한다.
개원 기념비
연병호 항일역사공원은 이 고장이 낳은 애국지사 연병환 연병호 연미당 선생의 애국 애족 정신을 기리며 후세에 표상과 산 교육장이 되도록 조성되었다. 이를 위해 힘써주닌 제3~4대 홍성렬 증평군수 님을 비롯한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를 표하고 공원조성의 목적과 취지의 정신이 영원할 것을 기원하며 곡산연씨 대동종친회에서 뜻을 모아 이 기념비를 세운다.
2016년 10월 일 곡산연씨 대동종친회 문중일동
연병호 항일역사공원은 이 고장이 낳은 애국지사 연병환 연병호 연미당 선생의 애국 애족 정신을 기리며 후세에 표상과 산 교육장이 되도록 조성되었다. 이를 위해 힘써주닌 제3~4대 홍성렬 증평군수 님을 비롯한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를 표하고 공원조성의 목적과 취지의 정신이 영원할 것을 기원하며 곡산연씨 대동종친회에서 뜻을 모아 이 기념비를 세운다.
2016년 10월 일 곡산연씨 대동종친회 문중일동
국치기념경고문
독립기념일의 말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에서 교정서 발표
대한독립기성총동먕선언
제헌국회에서 연호문제에 관한 건
헌법 개정에 반대하는 발언
초대 국무총리 이범석 조사
추도사
애국지사 연병환 선생 공적비
애국지사 연병환 선생 공적비
선생의 초명은 병우, 자는 순재, 호는 석란이다. 1878년 10월 21일 충청북도 증평군 도안면 석곡리 555번지에서 아버지 연채우와 어머니 전주 이씨의 4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1926년 8월 19일 오전 10시 일본 영사관 횡가에서 당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그토록 열망했던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한 채 48세의 일기로 파란만장한 생을 마쳤다. 선생은 1897년 관립 외국어 학교를 졸업하고 영국에서 유학했으며, 귀국하여 궁내부주사로 발령받아 인천 해관방변으로 관직에 입문하였다. 1898년 주일공사를 수행하여 일본 동경으로 건너가 외교사무를 수행하던 중 1907년 정미칠조약이 체결되자 공직을 사퇴하고 귀국하였으며, 청주군수를 제임받았으나 일본제국주의의 통감정치하에서는 어떠한 공직도 맡지 않겠다고 이를 단호히 거절했다. 1908년 중국에서 해관원으로 일하며 배일활동을 하던 중 일본제국주의자들에게 나라를 강탈당하자 분개한 나머지 자신은 물론 동생 연병호를 중국으로 망명시켜 독립운동에 가담케하였으니 그 위대한 업적은 일제 고등경찰 요사 등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선생은 1919년 간도에서 독립운동가를 후원하다 체포되어 2개월 간의 옥고를 치룬 바 있으며, 1920년 상해 대한인거류민단 산원으로 활동하였고, 여운형이 단장으로 있던 거류민단병사회의원으로도 활동하는 등 일제의 총칼 앞에 분연히 맞서 목숨 걸고 고군분투하였으며, 독립자금도 마련하여 헌납하였다. 따라서 정부는 대한민국의 자주독립과 국가 건립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하여 2008년 3월 1일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으니 지하에 잠드신 영령이나마 위로받게 되었다. 이와 같이 자신은 물론 가족의 생계와 운명은 생각지않고 오로지 국가와 민족만을 위해 목숨 바쳐 일제에 맞서 싸운 그 숭고한 애국.애족정신이야말로 우리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에 길이 남겨 널리 선양해야 할 위대한 업적이 아닐 수 없어 3만5천여 증평군민의 뜻을 모아 그 공적을 오석에 새겨 후세에 전하고자 한다.
서기 2011년 11월 일
서기 2011년 11월 일
독립운동의 민족혼
증평은 예로부터 뿌리 깊은 전통과 문화가 어우러진 고장으로, 훌륭한 위인들의 흔적이 많다. 그 중에서도 여기 '연병호 항일역사공원'은 곡산연씨 일가의 독립운동의 정기가 서린 곳이다. 연채우 공과 전주이씨는 슬하에 병환.병호.병주.병오 4형제를 두었는데, 모두 독립운동에 헌신하였고 병환과 병호 두 분은 독립유공자로서 서훈을 받았다. 또한 손녀인 연미당과 손녀사위 엄항섭, 외증손녀 엄기선도 조국의 독립투쟁에 나서 독립유공자로 훈장을 수여받았다. 이 분들이 흘린 피와 땀은 과거에는 조국 광복의 밀알이 되었고, 미래에는 민족 통일의 초석이 될 것이다. 여기 문화체육관광부와 충청북도의 지원과 협조로 연병호 선생을 비롯한 그 일가의 업적을 기리는 '연병호 항일역사공원'을 조성하여 그들의 민족혼을 기리고 후세의 사표로 삼고자 한다.
2017년 10월 31일 증평군수 홍성열
증평은 예로부터 뿌리 깊은 전통과 문화가 어우러진 고장으로, 훌륭한 위인들의 흔적이 많다. 그 중에서도 여기 '연병호 항일역사공원'은 곡산연씨 일가의 독립운동의 정기가 서린 곳이다. 연채우 공과 전주이씨는 슬하에 병환.병호.병주.병오 4형제를 두었는데, 모두 독립운동에 헌신하였고 병환과 병호 두 분은 독립유공자로서 서훈을 받았다. 또한 손녀인 연미당과 손녀사위 엄항섭, 외증손녀 엄기선도 조국의 독립투쟁에 나서 독립유공자로 훈장을 수여받았다. 이 분들이 흘린 피와 땀은 과거에는 조국 광복의 밀알이 되었고, 미래에는 민족 통일의 초석이 될 것이다. 여기 문화체육관광부와 충청북도의 지원과 협조로 연병호 선생을 비롯한 그 일가의 업적을 기리는 '연병호 항일역사공원'을 조성하여 그들의 민족혼을 기리고 후세의 사표로 삼고자 한다.
2017년 10월 31일 증평군수 홍성열
도명(圖明) 연병호
동포여!
우리는 참담한 멸망릉 면하야
자생을 도하려 하나니
전하면 생하고,
부전하면 사할지라
일거에 적을 파쇄하야
무궁화 삼천리 조국의 국권을 광복하고
백두산 상 태극기 하에
명년 금일을 기념하기로
신전에 맹서합시다.
동포여!
우리는 참담한 멸망릉 면하야
자생을 도하려 하나니
전하면 생하고,
부전하면 사할지라
일거에 적을 파쇄하야
무궁화 삼천리 조국의 국권을 광복하고
백두산 상 태극기 하에
명년 금일을 기념하기로
신전에 맹서합시다.
"원통한 시대의 초명(初名)은 병준"
연병호 선생의 가족 모습
연병호 선생의 가족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