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서곡리 산 61-6
- 탐방로그
- 애국지사 김상한의 묘에서 하방곡 버스정류장까지는 약 200m로, 도보로 3분 정도 소요된다. 김상한의 사적을 모두 방문하고 싶은 분은 김상한의 묘> 김상한 숭모비(실리곡리) > 김상한 창의숭모비(물태리) 순으로 방문하는 것을 추천드리며, 총 9.2km로, 차량으로 14분 정도 소요되는 거리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앞에 있는 묘소는 김상한 의병장의 부친이신 김수명 선생의 묘비였다.
孝子 贈通訓大夫司憲府監察慶州金公諱秀明之墓(효자 증통훈대부 사헌부감찰 경주김공 휘 수명지묘)
孝子 贈通訓大夫司憲府監察慶州金公諱秀明之墓(효자 증통훈대부 사헌부감찰 경주김공 휘 수명지묘)
뒤편에 있는 묘비는 김상한 의병장 조부의 묘비였다.
嘉善大夫吏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慶州金宗雨之墓(가선대부이조참판겸동지의금부사 경주김공 종우 지묘)
嘉善大夫吏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慶州金宗雨之墓(가선대부이조참판겸동지의금부사 경주김공 종우 지묘)
같은 번지 내에 또 다른 묘소가 있었다.
김상한 의병장의 묘소였다.
行通訓大夫司諫院正言兼成均館敎授三南御使慶北義兵總大將慶州金公諱商翰之墓
행 통훈대부 사간원정언 겸 성균관교수 삼남어사 경북의병 총대장 경주김공 휘 상한지묘
행 통훈대부 사간원정언 겸 성균관교수 삼남어사 경북의병 총대장 경주김공 휘 상한지묘
行通訓大夫司諫院正言兼成均館敎授三南御使慶北義兵總大將慶州金公諱商翰之墓
행 통훈대부 사간원정언 겸 성균관교수 삼남어사 경북의병 총대장 경주김공 휘 상한지묘
행 통훈대부 사간원정언 겸 성균관교수 삼남어사 경북의병 총대장 경주김공 휘 상한지묘
司諫院正言金先生商翰墓碣銘幷序
사간원 정언 김선생 상한묘갈명 병서
선생 휘 상한 자 주서 호 청은 관 경주 중시조 휘 인관 태서 16대조 휘 자수 호 상존 12대조 휘 세필 호 십철헌 시호 문간 考 휘 수한 가선대부 동돈령 妣 정부인 밀양박씨 생부 수명 선생은 1848년생이시며 配는 한양조씨이시고 문장 재예가 출중 1889년에 문과 1892년에 행 사간원 정언 성균관 교수 1893년에 통훈대부 삼남어사 1907년 칠조약에 비분통탄하여 구국정신으로 의병을 소집 이운강선생과 경북지방에서 멸왜할동을 하시던 중 그 지방인들이 경상도 의병총대장으로 추대하였다. 휘하 부장으로 이상태 이성천 이춘삼 원근선 등과 협력하여 1907년 7월에 경북 문경지구에서 왜적 250여명을 섬멸 동년 8월에 동지구에서 500여명을 섬멸 익년 3월에 단양 보발에서 백여명 동년 5월 사인암에서 3일 전투 왜적 150여명을 섬멸하시다. 동년 9월에 이운강군과 합세 제천 단양 조령에서 격전중 불행히도 이운강은 중탄으로 왜병에 생포되고 공은 만주등지로 망명 조국광복운동을 도모 사불여의로 국내 잠입하여 국권회복코자 활동하시다가 뜻을 못이루시고 장질 지호 가에서 한을 남기고 1917년 11월 1일 졸하시다. 조국광북후에 기 공훈이 인정되어 1977년 12월 13일 대한민국정부에서 대통령 박정희로부터 건국포장 수여받음 자 관호 증 광생원 역시 충의지심으로 선친의 유지 신봉하다가 뜻 못펴고 일생을 그대로 마침 손 동익 계 증손 중훈(생부 동악) 현손 기생 기태 주태 주천. 오호라 선생이 이처럼 진충보국하시는 성의를 오래동안 추모치 못하고 지금에 이르니 어이 송구스럽지 않으리.
명왈 天眷我邦하여 ..후략..
사간원 정언 김선생 상한묘갈명 병서
선생 휘 상한 자 주서 호 청은 관 경주 중시조 휘 인관 태서 16대조 휘 자수 호 상존 12대조 휘 세필 호 십철헌 시호 문간 考 휘 수한 가선대부 동돈령 妣 정부인 밀양박씨 생부 수명 선생은 1848년생이시며 配는 한양조씨이시고 문장 재예가 출중 1889년에 문과 1892년에 행 사간원 정언 성균관 교수 1893년에 통훈대부 삼남어사 1907년 칠조약에 비분통탄하여 구국정신으로 의병을 소집 이운강선생과 경북지방에서 멸왜할동을 하시던 중 그 지방인들이 경상도 의병총대장으로 추대하였다. 휘하 부장으로 이상태 이성천 이춘삼 원근선 등과 협력하여 1907년 7월에 경북 문경지구에서 왜적 250여명을 섬멸 동년 8월에 동지구에서 500여명을 섬멸 익년 3월에 단양 보발에서 백여명 동년 5월 사인암에서 3일 전투 왜적 150여명을 섬멸하시다. 동년 9월에 이운강군과 합세 제천 단양 조령에서 격전중 불행히도 이운강은 중탄으로 왜병에 생포되고 공은 만주등지로 망명 조국광복운동을 도모 사불여의로 국내 잠입하여 국권회복코자 활동하시다가 뜻을 못이루시고 장질 지호 가에서 한을 남기고 1917년 11월 1일 졸하시다. 조국광북후에 기 공훈이 인정되어 1977년 12월 13일 대한민국정부에서 대통령 박정희로부터 건국포장 수여받음 자 관호 증 광생원 역시 충의지심으로 선친의 유지 신봉하다가 뜻 못펴고 일생을 그대로 마침 손 동익 계 증손 중훈(생부 동악) 현손 기생 기태 주태 주천. 오호라 선생이 이처럼 진충보국하시는 성의를 오래동안 추모치 못하고 지금에 이르니 어이 송구스럽지 않으리.
명왈 天眷我邦하여 ..후략..
제천시 수산면 서곡리 산 61-6에 도착하여 탐방을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