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원박리 981-3
- 탐방로그
- 같은 장소에 이용태 이용준 추모비와 이용준 흉상이 있다. 이용태와 이용준은 형제사이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단암 이용태 선생의 자취
1890년 충청북도 충주시 산척면 광동리 출생
1900년 본적지 한문사숙 10년간 수학
1920년 봉양면 청년회장 선출 (7월 12일), 봉양모범서당 설립
1922년 봉양면 소작인회 발기 (1월 1일), 일본 동경평화박람회 시찰 (3월), 봉양농민조합 조직 (8월)
1924년 봉양면장 임명 (1월 9일), 산업조합 발기 (6월 3일)
1926년 봉양면장 사임 (10월 6일)
1928년 대종교 입교, 건축삼신전 말기 (1월 15일), 대동회 발기 (3월 3일)
1929년 대동흥업사 발기 (12월)
1934년 백운면장 임명 (1월 30일), 덕동간 이학교 설립
1939년 백운면장 사임 (7월), 대종교 영계(靈戒) 및 삼교 저수(參敎 祗受), 대종교총본사 찬범 (贊範)에 피임(被任), 중국으로 망명 (10월)
1942년 11월 19일,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피검, 목단강성 액하감옥에서 8년형 선고, 3년간 구금
1945년 광복과 함께 출옥하여 환국, 대종교 경의원장(經議院長) 피임
1956년 정교(正敎)의 교질(敎秩)과 함께 대형(大兄)의 호칭을 받음 (10월 8일)
1964년 노환으로 귀천(歸天), 향수 75세 (8월 15일), 사교(司敎)의 교질(敎秩)과 함께 도형(道兄)의 호칭을 추숭(追崇) (9월 27일)
1973년 건국포장 추서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대전국립현충원 애국지사묘역에 안장)
1890년 충청북도 충주시 산척면 광동리 출생
1900년 본적지 한문사숙 10년간 수학
1920년 봉양면 청년회장 선출 (7월 12일), 봉양모범서당 설립
1922년 봉양면 소작인회 발기 (1월 1일), 일본 동경평화박람회 시찰 (3월), 봉양농민조합 조직 (8월)
1924년 봉양면장 임명 (1월 9일), 산업조합 발기 (6월 3일)
1926년 봉양면장 사임 (10월 6일)
1928년 대종교 입교, 건축삼신전 말기 (1월 15일), 대동회 발기 (3월 3일)
1929년 대동흥업사 발기 (12월)
1934년 백운면장 임명 (1월 30일), 덕동간 이학교 설립
1939년 백운면장 사임 (7월), 대종교 영계(靈戒) 및 삼교 저수(參敎 祗受), 대종교총본사 찬범 (贊範)에 피임(被任), 중국으로 망명 (10월)
1942년 11월 19일,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피검, 목단강성 액하감옥에서 8년형 선고, 3년간 구금
1945년 광복과 함께 출옥하여 환국, 대종교 경의원장(經議院長) 피임
1956년 정교(正敎)의 교질(敎秩)과 함께 대형(大兄)의 호칭을 받음 (10월 8일)
1964년 노환으로 귀천(歸天), 향수 75세 (8월 15일), 사교(司敎)의 교질(敎秩)과 함께 도형(道兄)의 호칭을 추숭(追崇) (9월 27일)
1973년 건국포장 추서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대전국립현충원 애국지사묘역에 안장)
為邦為祖誠(위방위조성)
萬死雖無惜(만사수무석)
秋毫事未成(추호사미성)
愧我身先謫(괴아신선적)
나라와 조상을 위해 정성 바치려 나선 몸이라, 비록 천만번 죽는대도 무슨 아쉬움 있으랴만, 마음에 간직한 일 하나 이루지 못하고, 몸 먼저 옥에 갇히니 부끄럽기 한이 없다.
- 1943년 1월, 만주 영안현 유치감에서 조국의 독립을 이루지 못한 채 감옥에 갇혀있음을 한탄한 시 -
萬死雖無惜(만사수무석)
秋毫事未成(추호사미성)
愧我身先謫(괴아신선적)
나라와 조상을 위해 정성 바치려 나선 몸이라, 비록 천만번 죽는대도 무슨 아쉬움 있으랴만, 마음에 간직한 일 하나 이루지 못하고, 몸 먼저 옥에 갇히니 부끄럽기 한이 없다.
- 1943년 1월, 만주 영안현 유치감에서 조국의 독립을 이루지 못한 채 감옥에 갇혀있음을 한탄한 시 -
人之生死 自有正命(인지생사 자유정명)
不憂其生而生(불우기생이생)
何憂其死而死(하우기사이사)
死生唯(사생유)
義所在而已(의소재이이)
사람이 낳고 죽음에는 스스로 바른 천명(天命)이 있나니, 낳는 것을 근심하지 아니하고 살면서 어찌 죽을 것을 걱정하며 죽으랴, 죽고 삶은 오직 의리(義理)에 있을 뿐이로다.
- 1942년 일제에 검거되었을 당시, 단암 스스로 맹세한 글 -
不憂其生而生(불우기생이생)
何憂其死而死(하우기사이사)
死生唯(사생유)
義所在而已(의소재이이)
사람이 낳고 죽음에는 스스로 바른 천명(天命)이 있나니, 낳는 것을 근심하지 아니하고 살면서 어찌 죽을 것을 걱정하며 죽으랴, 죽고 삶은 오직 의리(義理)에 있을 뿐이로다.
- 1942년 일제에 검거되었을 당시, 단암 스스로 맹세한 글 -
애국지사 단암 이용태 선생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