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원박리 981-3
- 탐방로그
- 애국지사 형제 이용태 이용준 추모비는 충북 제천에 있으며, 이용태와 이용준은 형제관계이다. 애국지사 형제 이용태 이용준 추모비는 박달재 서원휴게소 내에 있으며, 이용태 흉상과 이용준 흉상과 같은 위치에 나란히 있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제천시 봉양읍 원박리 981-3, 박달재 서원휴게소내에는 애국지사 단암 이용태 흉상, 여산 이용준흉상 형제 추모비와 흉상이 있다.
애국지사 이용태·이용준 선생 형제 동상 및 추모비
관리번호: 24-1-19
관리자 : 제천시장 (박달재수련원장)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
제천출신 애국지사로 대종교 간부활동 등 민족운동과 독립운동에 기여하신 단암 이용태 선생과 중국에서 남화한인청년연맹, 조선민족혁명당 가담 등 독립운동을 하신 여산 이용준 선생의 공훈을 널리 알리기 위하여 2006년 9월 1일 박달재수련원에서 두 분의 동상 및 추모비를 건립하였다.
단암 이용태 지사는 1890년 충주시 산척면 광동리에서 출생하여 봉양면장과 백운면장을 역임하고 1939년 만주로 건너가 대종교 본사에서 활동을 하시다 1942년 대종교가 독립운동 정치단체로 지목되어 8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광복을 맞아 출옥하여 귀국한 후 1964년 8월에 별세하셨고, 여산 이용준 지사는 1907년 봉양면 원박리에서 출생하여 1927년 신간회에 가입 배일운동을 하다 상해로 망명하여 남화한인청년연맹 결사대원으로 1932년 천진폭탄 의거에 가담하였고 1933년 3월 육삼정에서 일제의 주중공사 암살계획을 추진 중 거사 직전에 발각되어 경성으로 압송 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한 후 대한보국군단 제1사단 사령관으로 활동하던 중 1946년 1월 공산당 피격으로 사망하였다.
정부에서는 이러한 두 형제 지사의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관리번호: 24-1-19
관리자 : 제천시장 (박달재수련원장)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
제천출신 애국지사로 대종교 간부활동 등 민족운동과 독립운동에 기여하신 단암 이용태 선생과 중국에서 남화한인청년연맹, 조선민족혁명당 가담 등 독립운동을 하신 여산 이용준 선생의 공훈을 널리 알리기 위하여 2006년 9월 1일 박달재수련원에서 두 분의 동상 및 추모비를 건립하였다.
단암 이용태 지사는 1890년 충주시 산척면 광동리에서 출생하여 봉양면장과 백운면장을 역임하고 1939년 만주로 건너가 대종교 본사에서 활동을 하시다 1942년 대종교가 독립운동 정치단체로 지목되어 8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광복을 맞아 출옥하여 귀국한 후 1964년 8월에 별세하셨고, 여산 이용준 지사는 1907년 봉양면 원박리에서 출생하여 1927년 신간회에 가입 배일운동을 하다 상해로 망명하여 남화한인청년연맹 결사대원으로 1932년 천진폭탄 의거에 가담하였고 1933년 3월 육삼정에서 일제의 주중공사 암살계획을 추진 중 거사 직전에 발각되어 경성으로 압송 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한 후 대한보국군단 제1사단 사령관으로 활동하던 중 1946년 1월 공산당 피격으로 사망하였다.
정부에서는 이러한 두 형제 지사의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愛國志士 檀菴 李容兌, 如山 李容俊 兄弟 追慕碑(애국지사 단암 이용태, 여산 이용준 형제 추모비)
이용태 지사는 1890년 중원군 산척면에서 출생하였으며 동생 이용준이 체포 압송되는 것을 목격하고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할 것을 결심 1939년 만주로 건너가 대종교 본사에서 활동 중 1942년 대종교가 독립운동 정치단체로 지목되어 간부 24명과 함께 검거 목단강 액하감옥에서 8년형을 선고받아 복역 중 광복을 맞아 출옥하여 귀국한 후 1964년 8월에 별세하였다.
이용준 지사는 1907년 제천군 봉양면에서 출생 1927년 신간회에 가입하여 배일운동을 하다가 상해로 망명하여 1931년 남화 한인 청년연맹 결사대원이 된 후 1932년 천진폭탄의거에 가담하였고 1933년 3월 육삼정에서 일제의 당시 주중공사 암살계획을 추진중 거사직전에 발각 체포되어 경성(지금의 서울)으로 압송 5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웠다. 정부에서는 이러한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1977년 건국포장을 두 형제에게 추서하였으니 이에 추모비를 건립하여 독립유공의 뜻을 기리고자 한다.
이용준 지사는 1907년 제천군 봉양면에서 출생 1927년 신간회에 가입하여 배일운동을 하다가 상해로 망명하여 1931년 남화 한인 청년연맹 결사대원이 된 후 1932년 천진폭탄의거에 가담하였고 1933년 3월 육삼정에서 일제의 당시 주중공사 암살계획을 추진중 거사직전에 발각 체포되어 경성(지금의 서울)으로 압송 5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웠다. 정부에서는 이러한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1977년 건국포장을 두 형제에게 추서하였으니 이에 추모비를 건립하여 독립유공의 뜻을 기리고자 한다.
서기 1990년 10월 일
사단법인 대한노인회 제원군지회 봉양면 분회 건립
사단법인 대한노인회 제원군지회
제원군수 건립비 지원
사단법인 대한노인회 제원군지회 봉양면 분회 건립
사단법인 대한노인회 제원군지회
제원군수 건립비 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