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충청북도 제천시 모산동 14-3
- 탐방로그
- 이범우 선생 추모비는 제천 의림지 둑방에 있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제천시 모산동 의림지 둑방에 있는 애국지사 이범우선생의 추모비를 찾아왔다.
제천의 용두산 끝자락에 자리잡은 이 호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저주지의 하나로 충청도를 가리키는 호서(湖西)라는 말도 여기서 비롯된 이름이다. 우륵(신라 진흥왕)이 쌓았다는 말도 있고, 박의림(조선 세종)이 만들어 의림지라고 부르게 되었다고도 한다. 제천의 옛이름이 고구려의 땅이던 때에는 제방을 뜻하는 내토였고, 신라가 이곳을 차지한 후에는 내제 혹은 대제라고 고쳐 불렀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의림지의 기원은 적어도 삼국시대이거나, 벼농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던 삼한시기까지 올라갈 수도 있다고 보고있다. 산골짜기에서 흘러 들어오는 흙과 모래를 서쪽 끝자락에 있는 용추폭포를 통하여 자연스럽게 밖의 홍류동쪽으로 내뱉는 뛰어난 얼개를 가지고 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전기에 수축이 있었고 닐제 초기에 수문을 다시 고쳐 그 규모를 키웠으며 1972년 큰 장마로 둑이 무너지자 이듬해 복구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경호루
애국지사 이범우 선생 추모비
공은 경주이씨 팔별후예로 1892년 10월 29일 모산에서 나시다. 한학에 조예가 깊었고 강직한 성품과 뜨거운 애국심은 인근에 명성이 높았다. 민족의 분노가 폭발하든 기미 3.1독립운동 그때에 공은 약관 28세이였다. 뜻을 같이한 권종필 전필현 이기하 투사들과 뭉치여 3월 12일 제천장날을 기하여 수백군중의 선두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그의 함성은 천지가 흔들이는 듯 방방곡곡에 메아리첫다. 그날 왜헌에게 잡히여 옥고 3년 6개월 그러나 그 기개 더욱 푸르렀고 후진양성과 민족정기를 교양하기에 침식을 잊으며 선간두옥에 둔거 왜인을 대함이 없었다. 1945년 8월 15일 광복의 술잔을 들고 비분의 전날을 돼색이던 공의 장한 영자 이제 민족 중흥의 거름으로 1969년 9월 21일 78세를 일기로 영겁으로 가시니 용두산 푸른솔 의림지 맑은 물과 더브러 청사에 길이 남은 표표한 유덕을 추모하여 그 공을 여기에 적음
1970.3.12. 애국지사 이범우 선생 사회장 장의위원회
1970.3.12. 애국지사 이범우 선생 사회장 장의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