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충청북도 제천시 두학동 231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제천향교에서도 언급되었던 제천시 두학동 231에 있는 의병론자 본거지 박약재를 찾았다.
博約齋(박약재)
박약재(博約齋)
념수재(念修齋)는 진주강씨 문중 강당으로 조선 선조 1600년경 자헌대부 강천민 호는 은암 선생이 건립하여 많은 인재를 양성하니 문인중에 중목공 강유, 문효공 조석윤등 저명한 인물이 배출되었다.
1905년 을사 삼월 을미일에 의암 유인석 선생이 만주로 부터 창의열사들을 이곳 념수재로 회합하니 선생을 중추로 수많은 열사들이 의병재기를 맹세하고 념수재 현판을 박약재로 고쳐 선생의 친필로 게시하니, 곧 선생의 창의를 전국으로 알리자는 약속의 뜻이다.
후일 박약재에서 치재 강순희, 회당 박정수 두분이 운강 이강년선생 창의사실기를 편찬하였으니 의병사 기록으로는 역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사료이다.
념수재(念修齋)는 진주강씨 문중 강당으로 조선 선조 1600년경 자헌대부 강천민 호는 은암 선생이 건립하여 많은 인재를 양성하니 문인중에 중목공 강유, 문효공 조석윤등 저명한 인물이 배출되었다.
1905년 을사 삼월 을미일에 의암 유인석 선생이 만주로 부터 창의열사들을 이곳 념수재로 회합하니 선생을 중추로 수많은 열사들이 의병재기를 맹세하고 념수재 현판을 박약재로 고쳐 선생의 친필로 게시하니, 곧 선생의 창의를 전국으로 알리자는 약속의 뜻이다.
후일 박약재에서 치재 강순희, 회당 박정수 두분이 운강 이강년선생 창의사실기를 편찬하였으니 의병사 기록으로는 역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사료이다.
진주강씨 유허비
제천 박약재
이곳은 진주 강씨 문중에서 자녀교육을 위하여 세운 강당이다. 조선 중기에 처음 세웠다고 전한다. 그후 여러차례 중수하였으며 1910년 중건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으며,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중앙에는 대칭, 좌우에 각각 온돌방을 두고 있다. '박약재'라는 현판은 조선말기의 유학자이며 의병장인 유인석의 친필이다.
정묘호란 때 척화를 상소한 상곡 강유가 이곳에서 수학하였으며, 1907년 호서의병장 운강 이강년의 '운강창의일록'을 이곳에서 강순희, 박정수 등이 편찬하기도 하였다.
이곳은 진주 강씨 문중에서 자녀교육을 위하여 세운 강당이다. 조선 중기에 처음 세웠다고 전한다. 그후 여러차례 중수하였으며 1910년 중건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으며,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중앙에는 대칭, 좌우에 각각 온돌방을 두고 있다. '박약재'라는 현판은 조선말기의 유학자이며 의병장인 유인석의 친필이다.
정묘호란 때 척화를 상소한 상곡 강유가 이곳에서 수학하였으며, 1907년 호서의병장 운강 이강년의 '운강창의일록'을 이곳에서 강순희, 박정수 등이 편찬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