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원 창의구국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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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월악리 333-1
탐방로그
이만원 의병장 생가에서 이만원 선생 창의구국기념비까지는 약 900m 떨어져있어서, 도보로는 13분, 차량으로는 3분 정도 소요된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또 한 달 후 제천시 덕산면 월악리 억수리 마을 도롯가에 있는 이만원 선생 창의구국기념비를 찾아왔다.
GPS 상의 주소는 덕산면 월악리 333-1이다.
산제 진성이공 만원 창의구국기념비
공은 1867년(정유)에 여기 월악산밑 억수동에서 진성 이의의 셋째아드님으로 태어났으니 자를 해수라 하고 산제는 호이다. 을미년 국모시해의 변 이후 일제의 침략의 마수가 삼천리 방방곡곡을 할퀴고 있을 무렵에 공은 이우는 국운을 몸으로 붙들어 세우려 하였으니 억수마을 골골이 담겨진 나라사랑의 넋을 어제일 처럼 일러온다. 공은 1897년 강원 충청의 의병장 의암 유인석의 독전장이 되고 을사이후 국운이 이미 기울자 책칼사 운강 이강년관 사생을 같이 하기로하고 그의 도충독장이 되어 영의 동남에 격서를 날리어 구국의 횃불을 높이 들었다.1906년 1월 조령싸움에서 탄환이 떨어지자 원주 배양산에 묻어둔 탄환을 옮기려하나 저긔 삼엄한 경계각 두려워 아무도 나서지 못하였으나 공이 단신으로 제천 송숫골에
서 청풍 후평에서 적무리와 싸우고 피하면서 무사히 운반하였다.그해 겨울 민가에 불지르고 노략질하는 적을 죽령에서 맞아 소백산 눈바람이 살을 에이고 굶어지친 병사가 열음에 쓰러였으나 공이 이에 독전을 거듭 적수로 적과 싸우는것을 보고 인근에 백성들이 혹은 항아리에 쌀을 가져오고 혹은 한그릇에 좁쌀죽으로 이를 도왔다하니 반세기가 지난 오늘에 돌이켜보니 참으로 감명깊은 거사리 하지 않을수 없다. 이어 인제 백담동에서 제천 오미리에서 강릉 홍천 양양 재산각지에서 즐기차게 전개된 공의 항일투쟁은 일일이 매거하기 어렵다 하늘이 돕지않음이었던가 어버이를 잠시 뵈러가던길에 적에게 피습되어 옥고 사년에 광무황제 특사로 출옥은 하였으나 그 여독으로 이승을 떠났으니 대한독립만세소리가 강산을 뒤흔들던 그해이다. 장하다 조야에 한 선비로서 맨주먹으로 적에게 항전 일신을 돌아보지 아니한것은 오직 우국충성 일념에서 하였으니 공에 그리던 조국광복 사십여 성상이 지난 오늘에 길이 뒷사람으로 하여금 큰 거울을 심게하고자 이 돌을 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