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충청북도 제천시 고암동 58-6
- 탐방로그
- 순국선열 최욱영의 묘는 충북 제천에 있으며, 제천 순국선열묘역에 안장되어 있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순국열사 최욱영지묘
한말의 일제 침략에 항거하여 각처에서 일어난 의병의 항쟁은 조국수호를 위한 이 나라 의병정신의 발현이었으니 일찌기 의병운동에 뛰어들어 일생을 조국수호에 바친 최욱영열사는 제천출신으로 자는 송산 호는 청계이며 불의와 타협할줄 모르는 강직한 성품으로 장년기에 이르러 특출한 문재와 탁월한 경륜을 쌓아 고향에서 후학들에게 충의의
도를 가르치고 이를 몸소 실천한 인물이었다. 1907년 정미칠조약이 맺어쳐 일본의 침략정책이 노골화하자 이강년과 영춘에서 의병을 일으켜 호서창의대장 이강년 위하에서 군사장으로 활약하여 충주를 공략하고 청풍 한수 단양으로 거쳐 문경 갈평에서 적을 격파하니 적의 시체가 산과 들에 즐비하였고 많은 무기를 노획하여 그 위세는 크게 승천하였다. 그러나 1908년 6월 금수산 작성싸움에서 이강년 의병장이 부상을 입고 왜군에게 체포되어 처형당하니 대장을 잃은 의병진은 약화되고 오래지않아 해산될수밖에 없는 처지에서 후일의 재기를 기약할뿐이었다. 1913년 그는 옛동지를 규합하여 비밀결사민단조합을 조직하고 무기를 갖추어 영월 원주 안동등지를 전전하여 군자금을 마련하고 재기를 추진하던중 체포되어 1915년 7월 징역15년형을 선고받고 경성감옥에서 복역중 혹독한 고문의 여독으로 신병을 얻어 1919년 9월 8일 향년 65
세를 일기로 감옥에서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조국수호에 몸바친 그 공훈을 기리고자 1977년 대한민국건국훈장 국민장을 추서하였다.
1984년 갑자 1월 일 순국선열묘 이장추진위원회
1984년 갑자 1월 일 순국선열묘 이장추진위원회
순국열사 최욱영지묘
이강년 의진에 들어가 군사장(軍師長)으로 활동하다가 이강년이 체포되자 1908년 귀향하여 권태준으로 이름을 바꾸고 활동을 계속하였다. 1913년 2월 고종의 밀서를 받은 의병 김재성과 함께 군자금 모금활동을 계획하고, 안동, 제천 등지에서 군자금 모금 및 동지규합 등의 활동을 전개하다가 1914년 일본경찰에 체포되었다. 1915년 6월 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5년형을 선고받고 마포형무소에서 복역하다가 오랜 옥고를 견디지 못하고 순국하였다.
이강년 의진에 들어가 군사장(軍師長)으로 활동하다가 이강년이 체포되자 1908년 귀향하여 권태준으로 이름을 바꾸고 활동을 계속하였다. 1913년 2월 고종의 밀서를 받은 의병 김재성과 함께 군자금 모금활동을 계획하고, 안동, 제천 등지에서 군자금 모금 및 동지규합 등의 활동을 전개하다가 1914년 일본경찰에 체포되었다. 1915년 6월 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5년형을 선고받고 마포형무소에서 복역하다가 오랜 옥고를 견디지 못하고 순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