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초천리 1358-5
- 탐방로그
- 애국지사 김영익 선생 의열추모비는 구례골 경로당 옆에 위치해있으며, 근처에는 구례골(초천1리) 버스 정류장이 있는데, 버스 정류장까지 도보로 1분 정도 소요된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구례골 경로당 옆에 있는 김영익 선생 의열추모비를 찾아왔다.
애국지사 김영익선생 의열추모비
애국지사 김영익선생은 안동후인으로 단기 4231년(1898) 무술 9월 16일 음성군 음성면 초천리에서 부 김수홍공과 모 광주반씨의 3남으로 출생하시다. 조부 정훈공은 구 한말 통정대부를 역임하시고 효행이 지극하여 효자로 표창되어 삼강록과 상흥승람에 명기되시다. 부 수홍공은 중학교관을 역임하시고 문장이 탁월하시다. 결술년 일제침략 국치에 항거하는 만인 ?를 울려 애국지성을 발양하시고 유고 4권이 전하시다. 선생은 유시부터 한학에 전심하여 학덕을 겸비하고 서예에 능하며 타의 존경을 받으시다. 기미년 선생의 21세시 서울 탑골공원에서 3월 1일 독립선언문 낭독과 더불어 만세시위운동이 궐기되자 전국 방방곡곡으로 전파되어 음성에서는 3월 18일 천도교 교구를 주축으로 장터에서 만세시위가 불붙다.
선생께서는 비장한 각오로 22일 초천리 정기선씨 서당을 찾아가 서생들을 규합하시어 28일 오전 10시 정문수 최만득 정대영 정문영 동지들과 장터로 출동하여 선생의 지휘하에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니 군중이 크게 호응하여 만세시위를 성공시키시다. 이로 인하여 선생과 동지들이 현장에서 왜경에 체포되고 주동하신 선생은 6월 17일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원에서 징역 4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면서도 애국의 뜻을 추호도 굴하지 않고 항하시다. 석방후에도 한결같이 애국정신으로 후진에 모범을 보이는 생을 누리시다가 ??4월 2일에 향년 52세로 서서하시다. 선생의 숭고한 애국정신을 길이 선양하고자 음성의 유지제현과 유족이 함께 정성을 모아 여기에 의열추모비를 삼가 세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