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대정리 산43
- 탐방로그
- 애국지사 안재헌의 묘는 범벅산에 있다. 대정2리 마을회관부터는 600m 정도 떨어져 있고, 차량으로 2분 정도 소요된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애국지사 청암 광주안공 재헌지묘
애국지사 안재헌선생은 1900년 음11월 2일 충북 음성군 삼성면 용성리에서 출생하셨다. 선생은 어려서부터 용모가 준수하고 품성이 활달하며 10여세에 이미 4서를 통달하였고 재예가 남달았으니 항상 패기가 넘쳐흘렀다. 일찌기 죽산보통 재학시부터 일제하의 굴욕과 압박에 항거하였으니 고종황제의 인산일에는 동지들을 규합하고 읍민 학생들을 이끌어 봉기에 앞장섰다. 1919년 3월 5일 개학날이자 죽산장날을 기하여 곳곳에 격문을 써붙이고 미리 준비해두었던 태극기를 꺼내어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가두행진에 들어갔다. 또 선생은 왜경을 습격하여 일인 서장으로 하여금 대한독립만세를 공창하게 하는 등 구국운동은 더욱 거세어갔다. 죽산읍는 물론 용인 안성게까지 3.1운동의 기운이 한층 고조되었으나 왜군헌병대의 무력에 저지당하고 말았다. 선생은 이 거사의 주동자로서 모진 고문과 악형을 감수하며 대한독립을 외치다 보안법위반이라는 죄명으로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 죄인번호 3285호로 징역 1년6월의 옥고를 치루었으나 출감후에도 조국광복운동에 불면불휴하였다. 이로부터 요시찰인물로 지목되어 큰 뜻을 펴지 못하시다가 광복과 함께 대한독립촉성회 대한청년단국민회장의 일을 맡아 몸과 마을을 다하셨다. 만년에는 초야에서 노인회일로 진력하시다가 1977년 6월 29일 여생을 마치셨다. 그 일생의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해 대통표창을 비롯한 여러차례의 포상이 되었다. 한스러운 지난날을 가슴에 안고 유명을 달리 하신 선생의 일신은 늘 애국에 있었으니 그 생애는 자손만대에 전해져 겨레의 거울이 될지어라.
음성군 삼성면 대정리 산43에 위치한 애국지사 안재헌선생의 묘소를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