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중규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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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충청북도 옥천군 이원면 백지리 486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독립운동가 곽중규(1891~1950) 이원면 백지리 출생, 부친 곽준희부터 이어진 3대 독립운동, 건국훈장 독립장 서훈
1891년 이원면 백지리에 출생한 곽중규 선생은 1919년 이원삼일만세운동에 참여 했다 체포되어 3개월간 옥고를 치렀다고 전하며 1921년 중국 상해로 망명해 1922년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임시의정원 비서, 이후에는 비서장으로 활동했다. 1925년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선임돼 임시대통령 이승만의 탄핵안을 제출, 면직처리하게 했으며 1926년에는 명성사진관, 1929년에는 성광사진관을 개업해 독립운동의 비밀연락장소로 제공했다. 1927년에는 상해 교민회 단장, 1931년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충청도의원으로 선출돼 활동했으며, 1932년 동생 곽중선에게 지시해 윤봉길의사의 홍구공원 의거를 도왔다. 1938년 만주 북부 석가장으로 이주해 독립운동을 계속했으며, 이승만 대통령 탄핵안 제출이 이유가 되어 해방 후 귀국하지 못했다는게 가족들의 증언이다.
옥천문화원, 옥천신문
영동군 이원면 백지리 486 애국지사 곽준희, 곽중규, 곽중선의 생가 안내판을 찾아가고 있다.
마을자랑비 이원면 백지리
다리산(月伊山) 정기 받아 한 생명 태어나니 그를 이름하여 백촌(白村)이라 하였도다. 효성이 극진하여 마을도 효자동이 되었더라. 그는 후에 과거에 급제하여 판서에 올랐으나 세상이 어지러워 바로 잡는 표석되어 굳은 의지 굽히지 않고 장렬히 순절하시니 그를 일러 사육신(死六臣)이라, 그 정신 이으려고 유허비도 세웠고 성역화하려 하나 여력이 못 미친다.
그 절의(節義)와 충절(忠節)을 길이 살려 자랑스런 후예답게 백지(白池)마을 만들어 보세.

사육신(死六臣)은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가 발각되어 죽은 6명, 박팽년(朴彭年),성삼문(成三問),이개(李塏),하위지(河緯地),유성원(柳誠源),유응부(兪應孚)을 말한다.
이떄 사육신 사건으로 김문기(金文起),박쟁(朴崝),권자신(權自愼),성승(成勝),윤영손(尹令孫),허조(許慥) 등 많은 사람이 연루되어 죽음을 당하였다.
곽중규 선생의 부친이신 곽준희, 동생되시는 곽중선 모두 독립유공자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