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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옥천군 동이면 평산리 732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沃川郡......
옥천군 동이면 평산리 732 평촌마을 뒷산 정상 부근 이기윤망북비를 찾아가고 있다.
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15호 옥천 이기윤 망북비(沃川 李箕允 望北碑) 1㎞
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15호 옥천 이기윤 망북비(沃川 李箕允 望北碑) 1㎞
옥천군 동이면 평산리 들미마을(평촌마을) 성골 보도연맹 민간인 학살지 안내판이 있다고 하지만 아직 위치를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이곳에 온김에 마을소개비에 혹시 사연이 있을까 싶어서 차를 잠시 멈추었다.
이곳에 온김에 마을소개비에 혹시 사연이 있을까 싶어서 차를 잠시 멈추었다.
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15호 옥천 이기윤 망북비(沃川 李箕允 望北碑)
이기윤 망북비
이기윤이 고종황제가 돌아가셨음을 애통히 여겨, 자기의 조상인 문경공(文景公) 이직(李稷, 1362∼1431)이 조선왕조의 개국공신임과 충성을 지속해 온 터에 이제 충성을 바칠 왕이 없음을 슬퍼하여 인근의 유생과 백성들을 데리고 산 기슭에 올라 임금이 계신 북쪽을 향하여 통곡하며 네번 절한 후 이 비를 세워 애통함을 달랬다고 한다.
옥천 이기윤 망북비(沃川 李箕允 望北碑)
옥천 이기윤 망북비(沃川 李箕允 望北碑) / 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15호, 옥천군 동이면 평산리 735
이 비석은 시골 유생인 이기윤이 1919년 고종 황제의 죽음을 매우 슬퍼하며 1920년에 세운 것이다. 이 비에는 '망북비'라 하여, '태황제(고종)가 돌아가시니 해와 달이 빛을 잃었구나. 온 국민이 상을 당하니 망극하도다."라고 쓰여 있다. 예로부터 국상을 당하면 지방 유림들이 이곳에 북쪽을 향해 두 번 절하였다고 한다. 이 비가 지니는 의미는 일제에 의해 국권을 잃을 우리 민족의 자존(自存) 의지를 담고 있다.
이 비석은 시골 유생인 이기윤이 1919년 고종 황제의 죽음을 매우 슬퍼하며 1920년에 세운 것이다. 이 비에는 '망북비'라 하여, '태황제(고종)가 돌아가시니 해와 달이 빛을 잃었구나. 온 국민이 상을 당하니 망극하도다."라고 쓰여 있다. 예로부터 국상을 당하면 지방 유림들이 이곳에 북쪽을 향해 두 번 절하였다고 한다. 이 비가 지니는 의미는 일제에 의해 국권을 잃을 우리 민족의 자존(自存) 의지를 담고 있다.
太皇帝崩 日月無光((태황제붕 일월무광)
臣民罔極 如喪考妣(신민망극 여상고비)
望北碑(망북비)
臣民罔極 如喪考妣(신민망극 여상고비)
望北碑(망북비)
開國功臣 行領議政 文景公 星州李○十五世孫 箕允頓首泣血 開國五百二十九年 立
개국공신 행영의정 문경공 성주이○십오세손 기윤돈수읍혈 개국오백이십구년 립
개국공신 행영의정 문경공 성주이○십오세손 기윤돈수읍혈 개국오백이십구년 립
紀念樹(기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