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충청북도 옥천군 군서면 하동리 산33-1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충민사
1910년 경술국치로 국권을 잃게 되자 구국의 일념으로 분연히 일어나 충청도 일원을 무대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어 옥중 순국하신 순국선열 김순구 선생과 항일투사 25인의 애국, 충정을 기리고 국민의 애국심 함양을 위하여 2002년 건립하였다.
김순구(1867~1919, 충북 옥천 출신) 선생은 충북 각지를 돌면서 동지들과 계속 투쟁하다가 고향인 군서면 동지들이 체포되어 가혹한 고문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듣고 옥천경찰서에 자진 출두하여 동지들을 구하고 항의하다 체포되어 모진 고문으로 공주감옥에서 옥중 순국하였다.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살신성인하신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들의 충정을 기리고 추향하는 마음을 항상 가슴속 깊이 간직합시다.
1910년 경술국치로 국권을 잃게 되자 구국의 일념으로 분연히 일어나 충청도 일원을 무대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어 옥중 순국하신 순국선열 김순구 선생과 항일투사 25인의 애국, 충정을 기리고 국민의 애국심 함양을 위하여 2002년 건립하였다.
김순구(1867~1919, 충북 옥천 출신) 선생은 충북 각지를 돌면서 동지들과 계속 투쟁하다가 고향인 군서면 동지들이 체포되어 가혹한 고문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듣고 옥천경찰서에 자진 출두하여 동지들을 구하고 항의하다 체포되어 모진 고문으로 공주감옥에서 옥중 순국하였다.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살신성인하신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들의 충정을 기리고 추향하는 마음을 항상 가슴속 깊이 간직합시다.
충민사 건립기
충민사는 순국선열 김순구 선생의 영정과 25인 항일투사의 위패를 모신 곳입니다. 검한재(儉閒齋) 김순구(金舜九) 선생은 1867년 10월 16일 충청북도 옥천군 군서면 하동리 마고촌에서 태어나시어 1910년 8월 29일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 한을 품고 단식투쟁하다 옥천, 회인, 문의, 강내, 괴산, 청주 등 충북 일원에서 3.1독립만세운동을 진두지휘하시었습니다. 그때 체포된 25인의 고향동지를 구하고 구속되어 공주 지방법원에서 징역언도를 받은 후 옥중만세운동을 계속 전개하다가 모진 고문으로 혼절하자 대정간에서 벼린 대못으로 육신을 박아 옥중에서 1919년 6월 28일 53세의 일기로 순국하시었습니다. 선생의 애국충절을 기리고자 1946년 3월 1일 군서면민일동이 순절비를 세웠고 1985년 11월 20일 국가보훈처에서 묘비를 세웠으며, 1985년 12월 15일에는 옥중에서 쓰시던 수저와 생매장시에 사용한 대못을 천안 독립기념관 3.1운동관에 전시하는 한편 1997년 10월 1일 서울 서대문 독립관에 순국선열 위패를 모시었습니다. 국가에서는 1977년 12월 13일 대통령 표창과 1991년 8월 15일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습니다. 이어 국비 1억원, 도비 1억원, 군비 1억원, 자비 99백만원 총 399백 만원을 들여서 이 충민사를 건립하여 후진들에게 숭고한 항일 구국정신을 귀감으로 삼고자 하는 바입니다.
2002년 3월 1일 옥천군수 유봉열
충민사는 순국선열 김순구 선생의 영정과 25인 항일투사의 위패를 모신 곳입니다. 검한재(儉閒齋) 김순구(金舜九) 선생은 1867년 10월 16일 충청북도 옥천군 군서면 하동리 마고촌에서 태어나시어 1910년 8월 29일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 한을 품고 단식투쟁하다 옥천, 회인, 문의, 강내, 괴산, 청주 등 충북 일원에서 3.1독립만세운동을 진두지휘하시었습니다. 그때 체포된 25인의 고향동지를 구하고 구속되어 공주 지방법원에서 징역언도를 받은 후 옥중만세운동을 계속 전개하다가 모진 고문으로 혼절하자 대정간에서 벼린 대못으로 육신을 박아 옥중에서 1919년 6월 28일 53세의 일기로 순국하시었습니다. 선생의 애국충절을 기리고자 1946년 3월 1일 군서면민일동이 순절비를 세웠고 1985년 11월 20일 국가보훈처에서 묘비를 세웠으며, 1985년 12월 15일에는 옥중에서 쓰시던 수저와 생매장시에 사용한 대못을 천안 독립기념관 3.1운동관에 전시하는 한편 1997년 10월 1일 서울 서대문 독립관에 순국선열 위패를 모시었습니다. 국가에서는 1977년 12월 13일 대통령 표창과 1991년 8월 15일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습니다. 이어 국비 1억원, 도비 1억원, 군비 1억원, 자비 99백만원 총 399백 만원을 들여서 이 충민사를 건립하여 후진들에게 숭고한 항일 구국정신을 귀감으로 삼고자 하는 바입니다.
2002년 3월 1일 옥천군수 유봉열
순국선열(殉國先烈)
흙냄새 물맛은 여전했건만 어이 성과 이름을 몽당 앗아가고 말도 글도 허무히 짓밟힌 채 왜구의 사슬이 온몸을 조일때 얼마나 나라 잃은 한을 불살랐던가! 찌들은 베잠뱅이 삼베적삼 살발에 풀부리로 메인목 축이며굽은 허리 조른 겨레 호미자루 수저가락 허리춤에 차고 몽당 붓 필선지 자리 밑에 재운 뒤 만.만세 충청 고을 누비며 광풍을 일으켰노라 임들은 드높은 슬기로 혼을 부수고 피맺힌 맨 주먹으로 육신을 깨트려 내땅.내 이름.내 말을 찾았도다 찬란한 그 이름 순국선열 김순구 선생님 이 나라 이 민족에 길이 빛나리.
2002년 3월 1일
직손. 명지대학교 교수 김관형 시인 헌시
흙냄새 물맛은 여전했건만 어이 성과 이름을 몽당 앗아가고 말도 글도 허무히 짓밟힌 채 왜구의 사슬이 온몸을 조일때 얼마나 나라 잃은 한을 불살랐던가! 찌들은 베잠뱅이 삼베적삼 살발에 풀부리로 메인목 축이며굽은 허리 조른 겨레 호미자루 수저가락 허리춤에 차고 몽당 붓 필선지 자리 밑에 재운 뒤 만.만세 충청 고을 누비며 광풍을 일으켰노라 임들은 드높은 슬기로 혼을 부수고 피맺힌 맨 주먹으로 육신을 깨트려 내땅.내 이름.내 말을 찾았도다 찬란한 그 이름 순국선열 김순구 선생님 이 나라 이 민족에 길이 빛나리.
2002년 3월 1일
직손. 명지대학교 교수 김관형 시인 헌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