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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영동군 심천면 각계리 2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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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군 심천면 각계리 226-3 마을 입구 각계2리(지계리) 내력비를 찾았다. 이곳은 2018년에 바로 옆에 있는 애국지사 덕산 김용호, 송재 김평근 부자 현창비를 찾았었던 곳이다.
2주 만에 다시 심천면을 찾는지라 부근의 애국지사 관련 검색을 하다가, 앞선 탐방 시에 촬영하지 않았던 마을 내력비에 애국지사 관련 언급이 있어서 다시 찾았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영동군 심천면 각계리 226-3 마을 입구 각계2리(지계리) 내력비를 찾았다.
각계2리(지계리
각계2리(지계리) 내력비
각계2리(지계리) 내력비
1. 현 각계2리에 언제 동리가 생겼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그 동리 이름은 신라 진흥왕 15년(554)에 백제가 신라의 관산성(현 옥천)을 침공했다가 대파당하고 퇴각하다가 이곳에서 또 격전을 하였는데, 특히 핏골에서 전멸하였으므로 그 후로 이 골짜기를 '핏골'이라 하였다는 전설이 따라 '굳게 지킨 땅'이란 뜻과 '불굴의 의지로 대성하라'는 대길 운을 따 '지계리'라 지었다고 전한다. 그런데 영동군지에도 위 전설이 있고, 또 조선 영조 36년(1759)과 고종32년(1895) 기록에 이곳을 '충청좌도 영동현 서이면 지계리'라 하였으며, 순종3년(1909)에는 이 동리 출신 의병장 김평근의 체포보고서와 경성공소원 판결문에 그 주소가 '영동군 서이면 지계리'라 되어 있으니 현 각계2리가 지계리 였음이 분명하다.
2. 1913년(국치 3년후)에 일제가 서둘러 행정구역을 개편하여 그 이듬해부터 시행하며 지계리를 영동군 심천면 각계리라 고쳤다. 이는 이 동리 출신 애국지사 김용호 부자의 순국과 항일사실을 지우려는 일제의 식민정책에 따라 동리 이름 마져 없앤것으로 본다.
3. 1968년 경에 행정구역을 개편하며 위 각계리에서 점촌, 회곡,직동의 3마을을 떼어 각계2리라 하였는데, 1995년에 동리 주민들이 일제의 압력으로 잃었던 전통적인 옛 동리명 지계리를 되찬아 병용하기로 결의하였다.
4. 각계2리(지계리) 소속마을
(1). 지계동(지계말) : 원래 지계말이던 마을 이름이 언제부터인지 점말로 바뀌었는데 이는 마을 뒤편에 옹기집 터가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옹기점이 있던 시절에 생긴 일인 듯하며, 1995년 주민드이 동리명을 지계리라 함과 아울러 지계말도 되찾아 쓰기로 결의하였다
(2). 회곡(가막제) : 마을 서편 골짜기에 점토가 있으므로 생긴 이름인듯 하며, 한때 서당이 있었으므로 서당골이라고도 한다.
(3). 직동(핏골) : 피(稷)가 많이 난다하여 붙여진 이름인 듯하며, 위1항의 전설이 남아있는 곳이다. 이제 이 동리가 생긴 이래로 긴 세월을 이어 동리를 가꾸어 주신 선인들께 깊은 감사를 드리고, 우리 주민들이 동리 발전을 위하여 더 한층 단합할것을 다짐하며, 후대들이 더 밝게 긍지를 가지고 전전할것을 기대하여 온 주민의 힘을 모아 유서 깊은 이 느티나무 쉼터에 이 비를 세운다.
1. 현 각계2리에 언제 동리가 생겼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그 동리 이름은 신라 진흥왕 15년(554)에 백제가 신라의 관산성(현 옥천)을 침공했다가 대파당하고 퇴각하다가 이곳에서 또 격전을 하였는데, 특히 핏골에서 전멸하였으므로 그 후로 이 골짜기를 '핏골'이라 하였다는 전설이 따라 '굳게 지킨 땅'이란 뜻과 '불굴의 의지로 대성하라'는 대길 운을 따 '지계리'라 지었다고 전한다. 그런데 영동군지에도 위 전설이 있고, 또 조선 영조 36년(1759)과 고종32년(1895) 기록에 이곳을 '충청좌도 영동현 서이면 지계리'라 하였으며, 순종3년(1909)에는 이 동리 출신 의병장 김평근의 체포보고서와 경성공소원 판결문에 그 주소가 '영동군 서이면 지계리'라 되어 있으니 현 각계2리가 지계리 였음이 분명하다.
2. 1913년(국치 3년후)에 일제가 서둘러 행정구역을 개편하여 그 이듬해부터 시행하며 지계리를 영동군 심천면 각계리라 고쳤다. 이는 이 동리 출신 애국지사 김용호 부자의 순국과 항일사실을 지우려는 일제의 식민정책에 따라 동리 이름 마져 없앤것으로 본다.
3. 1968년 경에 행정구역을 개편하며 위 각계리에서 점촌, 회곡,직동의 3마을을 떼어 각계2리라 하였는데, 1995년에 동리 주민들이 일제의 압력으로 잃었던 전통적인 옛 동리명 지계리를 되찬아 병용하기로 결의하였다.
4. 각계2리(지계리) 소속마을
(1). 지계동(지계말) : 원래 지계말이던 마을 이름이 언제부터인지 점말로 바뀌었는데 이는 마을 뒤편에 옹기집 터가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옹기점이 있던 시절에 생긴 일인 듯하며, 1995년 주민드이 동리명을 지계리라 함과 아울러 지계말도 되찾아 쓰기로 결의하였다
(2). 회곡(가막제) : 마을 서편 골짜기에 점토가 있으므로 생긴 이름인듯 하며, 한때 서당이 있었으므로 서당골이라고도 한다.
(3). 직동(핏골) : 피(稷)가 많이 난다하여 붙여진 이름인 듯하며, 위1항의 전설이 남아있는 곳이다. 이제 이 동리가 생긴 이래로 긴 세월을 이어 동리를 가꾸어 주신 선인들께 깊은 감사를 드리고, 우리 주민들이 동리 발전을 위하여 더 한층 단합할것을 다짐하며, 후대들이 더 밝게 긍지를 가지고 전전할것을 기대하여 온 주민의 힘을 모아 유서 깊은 이 느티나무 쉼터에 이 비를 세운다.
'지계동 애국지사 덕산 김용호, 송재 김평근(김현권)부자 현창비'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