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영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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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충청북도 보은군 장안면 구인리 산15-1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보은에 세거하는 예안이씨 익양공 휘 천 파의 종손으로 1889년 3월 17일에 출생하여 학문과 덕행이 출중하여 거유로 촉망받았고 일제의 국권 침탈에 항거하여 기미독립운동을 주도하셔서 삼일만세 사건에 보안법 위반으로 피체되어 장기수형 복역중 악형옥고에 울화병 발하여 여생을 와병중 1939년 5월 29일 수 50세에 분사하시다. 2018년에 국가보훈처의 애국지사묘소 단장계획에 따라 이 비를 세우다.
보은군 장안면 구인리 쇠실 예안이씨 종산 애국지사 이준영선생 묘소를 찾았다.
먼저 경로당 앞에 있는 구인리마을유래비를 찾았다.
求仁里(구인리)마을 由來碑(유래비)
구인리는 옛날 마을 입구에 서낭나무와 다리가 있어 귀신교(貴神橋) 또는 지렁이들(蚯蚓坪,구인평)이라고 불리던 곳이다. 구인이라는 지명을 얻게 된 것은 조선 숙종 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 세종때의 과학자이며 무신이었던 불곡(佛谷) 또는 백곡(栢谷) 이천선생의 후손인 이성만, 이은만 형제가 이곳에 정착하면서부터 구인리는 예안이씨(禮安李氏)의 집성촌이 되었는데, 이 마을에 사는 이성만, 이은만 형제는 그들의 효성과 우애가 돈독하다는 소문이 널리 펴져 당시 보은 현감으로 있었던 이번(李蕃)이 영의정으로 있던 그의 아우 이여(李畬)와 함께 이 마을에 들러 두 형제의 효성과 우애를 극찬하고 마을 이름이 귀신다리가 아름답지 못하다 하여 영의정이 여기 「효제(孝悌)는 바로 어진 것이 그 근본이다」라고 말하며 마을 이름을 구인교(求仁橋)라고 고쳐 부르도록 하였다. 구인리는 자연마을인 구인(구신다리, 귀인다리) 방아다리, 대목이, 쇄실로 이루어져 있다.
이에 구인리 주민들은 마을의 무궁한 발전을 소원하여 주민들이 성의를 모아 마을 유래비를 건립하는 바이다.
2008년 11월 17일 구인리주민일동 건수
求仁亭(구인정)
마을입구에 있는 예안이씨세거지비
구인리
禮安李氏世居地(예안이씨 세거지비)
前參奉李公用華(전참봉 이공용화), 幼學李公用琪((유학 이공용기) 賑恤不忘碑(진휼불망비)
예전 진휼불망비가 뒷편에 서 있었다.
이준영 애국지사의 증손되시는 이선교선생을 만나서 지사님의 묘소를 안내 받았다.
보은군 장안면 구인리 96 100년된 재실 永昌齋(영창재)인데, 현재는 사용하지 않고 있다고 알려주셨다.
三一義士禮安李公諱準永之墓(3.1의사 예안이공 휘 준영지묘)
愛國志士禮安李公準永之墓(애국지사 예안이공 준영지묘)
愛國志士禮安李公準永之墓(애국지사 예안이공 준영지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