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 남천리 258-1
- 탐방로그
- 용담유사 간행지 표지석은 충청북도 단양군 샘골마을 입구에 위치해있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천도교 경전 용담유사 간행지
천도교 경전 용담유사 간행지
천도교경전 용담유사 간행지
이곳 단양군 샘골(南泉洞)은 천도교 제1교조 대신사 수운 최제우(水雲 崔濟愚) 선생이 지은 용담유사(龍潭遺詞)를 처음으로 간행한 뜻깊은 곳이다. 제2세 교조 신사 해월 최시형(海月 崔時亨)은 수운 선생의 명교에 따라 경전(經典)을 간행하려 했으나 포덕 5년(1864) 3월 뜻밖에 수운선생의 순도에 따른 수난과 포덕 12년(1871) 3월 영해교조 신원운동으로 뜻을 이루지 못한채 18년간을 미루어 오다가 포덕 21년(1880)에 인제군 갑둔리에서 동경대전 간행을 마치고 포덕 22년(1881) 단양군 장정리에 은신하시던 해월신사는 이해 5월 이곳 샘골 여규덕(呂圭德)의 집에 간행소를 설치하여 6월 드디어 수백권의 용담유사를 간행하게 되었다. 천도교중앙총부는 해월신사의 거룩한 덕업을 기리기 위하여 해월신사 순도 10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용담유사를 간행한 이곳에 표지석을 세우다.
포덕 139년(1998) 3월 27일 천도교 중앙총부 해월신사 순도 100주년 기념사업회
이곳 단양군 샘골(南泉洞)은 천도교 제1교조 대신사 수운 최제우(水雲 崔濟愚) 선생이 지은 용담유사(龍潭遺詞)를 처음으로 간행한 뜻깊은 곳이다. 제2세 교조 신사 해월 최시형(海月 崔時亨)은 수운 선생의 명교에 따라 경전(經典)을 간행하려 했으나 포덕 5년(1864) 3월 뜻밖에 수운선생의 순도에 따른 수난과 포덕 12년(1871) 3월 영해교조 신원운동으로 뜻을 이루지 못한채 18년간을 미루어 오다가 포덕 21년(1880)에 인제군 갑둔리에서 동경대전 간행을 마치고 포덕 22년(1881) 단양군 장정리에 은신하시던 해월신사는 이해 5월 이곳 샘골 여규덕(呂圭德)의 집에 간행소를 설치하여 6월 드디어 수백권의 용담유사를 간행하게 되었다. 천도교중앙총부는 해월신사의 거룩한 덕업을 기리기 위하여 해월신사 순도 10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용담유사를 간행한 이곳에 표지석을 세우다.
포덕 139년(1998) 3월 27일 천도교 중앙총부 해월신사 순도 100주년 기념사업회
YTN과 보훈처에서 공개한 자료에 의하면 단양군 단양읍 노동리 350 애국지사 김복식의 묘소가 있다고 되어있다.
물론 위성지도상으로 묘소가 보이지 않았고 워낙 오류가 많은 자료이지만 혹시나 싶어서 온 김에 찾아보았다.
물론 위성지도상으로 묘소가 보이지 않았고 워낙 오류가 많은 자료이지만 혹시나 싶어서 온 김에 찾아보았다.
해당 번지에는 전혀 묘소가 없고, 그 부근에 묘소가 보이지만 상석이나 묘비가 없어서 확인이 불가능하다.
단양군 대강면 남천리 258-1 샘골 마을입구 용담유사 간행지 표지석을 찾아가고 있다.
남천리비문
장엄한 소백산 도솔봉의 아래에 자리한 우리 마을 샘골은 조선말에는 천동리라고 불렀다. 그러다가 1917년 대흥면과 금강면이 합쳐질 때에 금강면의 천동리(현재의 단양읍 천동리)와 구별하기 위해 남천리로 이름이 바뀌었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한 집안처럼 도우며 그 어려움을 나누어 극복하는 아름다운 전통이 있는 우리 마을은 어른을 공경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아름다운 미풍도 함께 가지고 있다. 양주조씨의 비문은 이러한 우리마을의 전통을 잘 말해주고 있다. 또한 우리마을은 동학의 성지이기도 하다. 1881년 여규덕 선생의 집에서 동학의 2세 교조인 해월 최시형선생이 동학의 경전인 용담유사를 간행하기도 하였다. 산 좋고 물 좋은 우리 고향 남천이, 샘이 많아 샘골이라고 한 이곳에서 우리는 채소와 과일을 가꾸며 오늘도 행복하게 살아간다. 그리고 우리 고향을 더욱 아름답게 가꾸어 후손들에게 복자의 낙원으로 물려 주리라.
장엄한 소백산 도솔봉의 아래에 자리한 우리 마을 샘골은 조선말에는 천동리라고 불렀다. 그러다가 1917년 대흥면과 금강면이 합쳐질 때에 금강면의 천동리(현재의 단양읍 천동리)와 구별하기 위해 남천리로 이름이 바뀌었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한 집안처럼 도우며 그 어려움을 나누어 극복하는 아름다운 전통이 있는 우리 마을은 어른을 공경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아름다운 미풍도 함께 가지고 있다. 양주조씨의 비문은 이러한 우리마을의 전통을 잘 말해주고 있다. 또한 우리마을은 동학의 성지이기도 하다. 1881년 여규덕 선생의 집에서 동학의 2세 교조인 해월 최시형선생이 동학의 경전인 용담유사를 간행하기도 하였다. 산 좋고 물 좋은 우리 고향 남천이, 샘이 많아 샘골이라고 한 이곳에서 우리는 채소와 과일을 가꾸며 오늘도 행복하게 살아간다. 그리고 우리 고향을 더욱 아름답게 가꾸어 후손들에게 복자의 낙원으로 물려 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