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충청북도 괴산군 소수면 몽촌리 114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으로 오늘 이처럼 훌륭한 공적비를 세우게 되었으니 공이시여 미쁘게 생각하시와 고희 잠드소서.
괴산군 소수면 몽촌리 114 애국지사 유해륜 선생의 묘소를 찾았다.
주소상으로는 사당의 좌,우 모두가 해당된다. 먼저 사당의 왼쪽 언덕부터 찾아보기로
사당의 오른쪽 방향
애국지사 진주유공 해륜지묘
공은 1883년 12월 12일 이곳 몽촌에서 태어 나셨으니 임진왜란시 구국의 일익을 담당하여 그 명성이 청사에 혼요한 진원부원군 서경공 휘 근의 11새종손이며 ...중략.. 1910년 공년 28세에 일본의 강점으로 나라를 잃게되자 그는 망국한 달랠길없어 마침내 동향의 경권중 한봉수 문경의 이강년등과 손잡고 항일구국의거에 참가하여 전남의 곡성 구례 중남의 금산 경북의 문경등지에서 선혈릏 쭈히녀 왜병과 유격전을 벌리다가 일헌병에 체포되어 총살직전에 왜헌병 보조원 매수
구사일생하셨고 9년후 기미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자 공은 당시의 동향 독립지사였던 홍명희와 긴밀한 연락하에 동지인 경권중 송능식 등과 더불어 이곳 소수면 길선리를 중심으로 대대적인 만세운동을 일으켜 태극기를 제작 배포하면서 수일동안 수백명씩을 동원 연일 일경과 대치하면서 몸을 초개같이 던저 만세운동을 주도하시다가 끝내 일경에 체포되시어 청주지청에서 징역 10월형에 처해지셨다. 이러한 공의 행적은 독립운동사와 그 자료집에 상세히 수록되어 있으니 아! 공이시여 일경의 그 혹독한 고문과 옥고를 치러내심이 그 몇번이었으며 끈질긴 왜경의 감시와 추달속에 신음하심이 그 얼마였으라오? 그러나 공은 그 강인불굴의 의지로 끝내 이를 극복하시고 마침내 몽상에도 잊지못할 조국의 광복을 몸소 지켜보셨으니 나 어린 동자같이 작약환희하시던 그날의 그 모습 지금도 눈에 선하오리다. 그러나 어쩌랴 그 기쁨도 오래지 않아 동족상잔의 6.25비극은 마침내 공을 통한속에 장서케 했으니 때는 1950년 9월19일 9.28수복직전에었다. 오호라! 기구한 공의 평생이시어 차마 눈을 감지못ㅎ셨으리라 그러나 공이시여 그렇케도 사랑하시던 이 나라 이 겨레는 그 처참한 폐허속에서도 일진월약하는 눈부신 발전속에 통일의 날도 머지 않았으니 부디 고히 눈감으소서 비록 공께서는 바라는바 아니실지나 효손승대와 공을 숭묘천양코저하는 이고장 유림들의 정성 그리고 자고로 충절을 숭장하는 이 나라의 아름다운 전통은 마침내 공의 높은 뜻을 영원히 기리고저 지난 1990년 8월 15일 광복절을 기해 송께 찬란한 대한민국전국훈장애족장이 수여되고 또 금번 보훈처와 괴산군수의 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