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재의병 격전유적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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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괴산군 사리면 수암리 산49-2
탐방로그
충북 괴산군 사리면 수암리 산49-2에 있는 모래재의병 격전유적비를 찾아왔다. 저 고개가 모래재였다.
의병장 한봉수는 이정구 등 9명의 의병을 지휘하여 1908년 5월 이곳을 지나는 일본군 우편물 호송대를 습격하여
이들을 사살하고 총기, 탄약, 우편물 등을 노획하는 전과를 올렸다고한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의병장 한봉수는 이정구 등 9명의 의병을 지휘하여 1908년 5월 이곳을 지나는 일본군 우편물 호송대를 습격하여
이들을 사살하고 총기, 탄약, 우편물 등을 노획하는 전과를 올렸다고한다.
모래재의병 격전유적비
괴산 모래재 의병 격전유적
일본은 한국침략을 위해 1905년 강압으로 을사보호조약을 체결하였으며 1907년에는 한국군대를 해산시켰다. 이와 같은 일본제국주의의 국권찬탈에 격분하여 전국 각지에서는 일제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구하려는 의병운동이 일어나 일본군의 현병대 병참기지 우체국을 습격하는 등 항일운동을 맹렬히 전개하였다. 이곳 모래재에서도 항일구국의 큰 뜻을 품은 의병장 한봉수가 이정구등 9명의 의병을 지휘하여 1908년 5월 이곳을 지나는 일본군 우편물 호송대를 습격하여 이들을 사살하고 총기 탄약 우편물등을 노획하는 전과를 올렸다. 이와같이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국권회복과 민족의 정통을 이르려는 선렬의 우국충정을 길이 전하고자 이곳에 유적비를 세운다.
1984년 11월
충북 괴산군 사리면 수암리 산49-2에 있는 모래재의병 격전유적비를 찾아왔다. 저 고개가 모래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