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오순난의병장사공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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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충청남도 홍성군 홍성읍 대교리 124-2
탐방로그
병오순난의병장사공묘비는 충청남도 홍성군 홍주의사총 내 묘역 옆에 위치해있다. 정인보가 글을 짓고 심상직이 글씨를 썼다. 이 홍성의사총은 조선말기(병오년) 홍성 지역에서 있었던 의병 운동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희생된 분들의 유해를 모신 곳으로 처음에는 구백의사총으로 불리다가 현재는 홍성의사총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을사조약이 체결된 후 홍주성에서 일본군에 대항하여 싸우다 순국한 의병 수백 명의 유해가 묻혔다고 하는데, 1949년 4월 5일 홍성 군수 박주철과 경찰서장 박헌교가 부하직원들과 함께 나무를 심다가 의외로 많은 유골을 발견했고, 홍주성에서 싸우다 전사한 의병들의 유골이 임시 매장된 것으로 판명되어 유골을 모아서 분묘를 조성하였다 한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倡義祠(창의사)
충남 홍성군 홍성읍 대교리 124-2 홍성의사총.

이 홍성의사총은 조선말기(병오년) 홍성 지역에서 있었던 의병 운동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희생된 분들의 유해를 모신 곳으로 처음에는 구백의사총으로 불리다가 현재는 홍성의사총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홍주의사총 성역사업조성기
악날한 일본군이 배일노선을 고수하던 국모 명성화후를 시해하고 이어 단발령의 강행과 을사보호조약의 체결로 민심이 날로 흉흉해지자 이에 분개한 홍주고을 충의열사들이 분연히 창의봉기하였으니 이는 조선조말 주권회복을 선도한 항일의병의 시초였다.
구국일념에서 죽기를 맹서하고 적수공권으로 항전 하였으나 1906년 병오 음 4월9일 여명에 중과부적으로 순의하였으니 산천도 경탄통곡할 참사였다. 900여 의사공들의 시신은 구국의 원한도 풀지 못한채 산격위에 ??만 오가는 음곡에서 40여년간 풍상설한에 폭로되었으니 진실로 가슴을 외이는 통한이었다. 민족이 있어도 강토가 없었던 왜정때에는 산화한 선열들의 유골을 수묘할 겨를 조차 없었다가 8.15광복을 맞아 산재한 황예를 수심하여 심감합장의 혜를 갖춘 후, 사당에 위패를 봉안하고 900의사총이라 하였다.
1991년 12월 총 37억원의 재원을 마련 만여평의 부지를 확보하고 묘역정비, 사당보수, 석물조성, 삼문신축과 부속공사까지 완성하여 말끔히 단장하고 이 성역을 홍주의사총이라 개칭하였다.
이 역사적인 사업은 살신으로 호국한 영령들의 넋을 영원히 애도하고 그 순국정신을 계승함으로써 만세토록 호국할 수 있는 충절의 지표가 될것이다.
창의문
병오순난의병장사공묘 비
대한제국 광무10년(1906) 윤달 4월 9일밤 왜군이 홍주(홍성)의 동문을 공격하였다. 우리의 의병과 장졸은 이에 총격하여 힘써 싸웠으나 새벽에 모두 전사하였다. 세앙인은 이 일을 홍주에서 일어난 병오년의 일이라 한다. 그 이전 을사년(1905) 겨울 일본이 5적대신(박제순, 이지용, 이근택, 이완용, 권중현)과 연계하여 보호조약을 맺어 국권이 느닷없이 일본에게 넘어갔다. 정부.민간의 충절과 의리있는 인사들은 대중을 모아 사투를 맹세하였다. 마침 고종의 밀지를 받아 남으로 내려온 자가 있어 기세를 모아 밀지를 따랐다. 의병이 남포를 기점으로 홍주에 들어가 부서를 처음 정하고 왜적이 쳐들어와 성에 다다름을 알지자 주장이 달아났다. 지난 항쟁사로 예를 들어도 적을 만난 장졸을 거느리지 못하면 부하들도 스스로 정비하지 못했다. 오직 이번에 제어한 일은 의병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마다 나라잃은 슬픔에 사무쳐 답답한 심정이 가슴에 가득하여 칼날에 눈빛이 번득인지라 왜적을 만남이 10년간의 한 남긴 원수같았다. 그러나 우거진 숲속에서 갑자기 적을 만났의, 누가 이를 막을 수 있었겠는가. 이 일로 니날 성에 남은 의병들은 줄지어 선 대오가 장엄하였고 손발이 매우 날렵하였다. 이는 사람에 의해 제어한것이 아니고, 정의에 의한것이다. 성재한, 채광묵, 전태진, 서기환등이 의병 영관이 되었다. 어떤이가 재한에게 "주장이 가면 앞으로 어떻게 합니까?"라 하니, 재한이 그를 꾸짖어 말하기를 "남아가 여기서 머리와 귀를 베일지언정 어찌 왜적에게 굴복하랴"고 하였다. 광묵, 태진, 기환등도 모두 뜻이 같아 더욱 싸움에 힘쓰게하니 병사들도 힘써 그 명을 따랐다. 이는 영관을 따른것이 아니라 정의를 보고 따른것이다. 의병이 보유한 병기는 모두 낡았으나 왜적의 대포의 위력은 천지가 진동하여 앞뒤의 건물들이 전복되고 뒤흔들렸다. 의병들은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왜적과 싸워 크게 살상시켰다. 이에 적장 토방원지조와 목태랑이 모두 죽었다. 한참 싸움이 벌어지때 달빛이 밝다가 갑자기 누런 안개가 짙게 끼어 지척간도 알아볼 수 없었다. 적은 군사를 늘려 양면으로 공격하여 성은 결국 함락되었다.
이때 의병으로 죽은이의 시신은 언덕만치나 쌓여 이튿날 이를 가져다 골짜기의 구덩이에 매장하였다. 당시 왜적의 기세가 더욱 치열하여 근방사람들도 잡혀 시체더미난 늘어나 길이 막힘을 볼수 있었다. 시신이 자기집에 보내진 자는 거의 없었다. 그들의 성명도 알지 못해 인명수가 중복되어 밝혀지지 않은자는 어떤이는 7,8백 또 어떤이는 5,6백명이라 한다. 지금도 그 날이 되면 성곽 안팎으로 기제를 지내는 밤의 곡소리가 이따금씩 들려온다. 대저 을사변란 이후 그 지역 의병은 계속 일어나 모두 각기 흩어져 행동하였다. 의병들이 성을 지켜 큰 왜적을 대한한것은 오직 홍주의 일이었는데, 졸지에 일군에 전멸하였다. 비록 비참하였지만 그 주민들의 충정에 감동하여 의병이 다시 일어났다. 왜적은 더욱 포악해져 우리 의병은 이에 맞추어 세력을 확장하였다. 그 당시 형세는 의병이 각자 흩어져 행동한것과 성을 스스로 지킨일인데, 모두 승리하지 못한 계획이었다. 한치의 칼날로 암석을 찔러 잘리게 된것은 칼날뿐이었다. 이는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고도 알 수 있는 일이니, 홍주의 의병과 군자들이 어찌 당시 형세가 그와 같았음을 몰랐겠는가! 그 싸움에서 이기지 못할줄 알면서도 오히려 왜군과 싸워 전사했으니, 이는 의가 극진하고 인이 지극한 것이다. 오직 그리하여 의병과 왜군사이의 강약과 예리, 노둔함이 더울 차이가 있었고, 여려군자들의 정의가 더욱 밝아져 해나 별이 오랠수록 몹시 빛나
게 되는것과 같았다. 그 정의가 바로 잡힘에 으르러 나라위한 기둥을 쌓은지 40년만에 이미 실추된 것이 다시 정비되고 산하가 복구되었다. 이에 정의는 마침내 하늘의 이치를 바로잡아 강약과 예리, 노둔함은 전생의 승패에 있어 그 운명이 오래지 않음을 알수있다. 이 고을 동쪽 간동의 왼편 산기슭아래는 전사한 의병들의 시신이 묻힌곳이다. 늘 큰비가 내리면 이곳의 유골들이 빗물에 쓸려 떠 내려갔다. 대한민국 정부수립(1948)된 이듬해 이 고을의 인사 윤대영등이 관원과 의논하고 주민을 징발하여 흙을 파내 매장된 구덩이에서 유골을 꺼내 남방60척(약 18미터) 떨어진 평원에 국장으로 옮겼다. 충청남도청 산업국장 정낙훈이 산림행정과 여러 관리를 감독하고 부역사업에 관한 계획을 세웠다. 무덤의 큰 봉분을 더 넓히고, 돌계단도 높고 견고하게 만들었으며, 나무를 세워 표지를 만들고 열치정도의 잔디를 깔았다. 많은이들이 그 일을 경건히 하여 마치 자기 조상 받들듯 한지라, 나도 이 봉분을 지나다 배례드리면 숙연히 슬퍼지고 조심스러워 졌다. 낙훈은 여러 군자들이 정의로 왔어도 그 이름이 전하지 않음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아! 나 역시 안타깝게 여겼으니 이번 일은 후세 사람이 그들의 이름이 전하지 않음을 한스러워하기 때문에 더욱 그 일의 전함이 오래가게 한것이다. 또한 정의에 전일하여 나라위해 일찍 전사한 사람들을 위한것이다. 향기로운 봄바람 내는 천지의 바른 원기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으니, 또 어찌 그런 일들이 벌어지겠는가? 당초 고종의 밀지를 받아 의병을 일으키고 왜적의 소식을 듣자 급히 달아나 죽음을 면하게 된 자는 바로 민종식이다. 이는 기록에 남겨 후세에 반드시 알려야 할것이다.
명을 지어 말한다. 국운이 기울자 교활한 왜적이 틈타 안으로 간교한 무리 맺고 외세 서로 연결했네. 외교권, 내정권도 없어 갑옷차린 의병들 격전하여 용맹으로 슬픔 잊었네. 오직 정의는 가까워 인심을 바르니, 누가 이 백성위해 나물죽꺼렸으랴? 눈물 흐느껴 밀지 전해듣고, 세찬 바람 밀려오듯 하룻 저녁에 모였지. 병기주고 깃발세워 남포에서 지낸 마제 그 다음 홍성에서 농부는 밭 버리고 공인은 기구에 손 놓아, 자네 서두르게! 나라는 버릴 수 없어. 왜적의 기세 끝없이 삼천리에 퍼져, 홍주성 함락에도 충성 의리로 빛냈네. 왜적은 냇물처럼 밀려와 동문 위급한데 의병들은 의로운 명령따라 거느림 없이 기강 섰네. 우리 모두 과감히 굳세게 혼자서 열사람 물리치고, 활쏘기 서툴지만 적장 쓰러뜨려 두려워했지. 부모님 날 낳아 오늘밤 써먹게 하시니, 저 밝은 달 떠 여기 비추는 한 굴하지 않으리. 세력에 강약있지만 정의는 오직 하나, 연속 패배로 괴로워 다시 수복하기 숨가빳네. 왜 놈 등살에 하늘도 아찔해 누런 안개 자욱하, 의병의 시신은 분투한 몸이나 성은 왜적이 차지했었지. 우리 의병의 전사로 방어 할일만 남아, 몸은 비록 죽었지만, 한번 방어로 영원하리. 열렬한 정기는 해, 별되어 백성의 고충 도와 길이 변함없으리. 이끌면 따라오니 천명이 내린 무리들, 나쁜 종자 내버려 좋은 열매 다시 익으리. 옛 의병의 깃발 휘날려 여러 신령도 할일 맡는데, 지난날 회상에 어찌 슬프지 안겠나! 높은 월산 아래 금마천 맑게 흐르고, 마을 사람들 옛 이야기에 땅 가린 수풀만 무성하네. 수리부엉이 어둠 알려 파란 도깨비 불 깜박 깜박 흩어진 백골에 불칩 비추어 긴 장마 이제 개누나. 밝고 높은 땅 찾아 거친 무덤 옮겨, 감히 선인의 공 갚으려 진정 이 고을 건진일 알리려네. 깊은 묘 구멍, 높은 봉분에 띠풀은 솜털인듯, 아리따운여인 꽃 바쳐 여기 저기서 찾아오내. 아! 밝은 혼령이여 돌아보심이 어떠한가? 묘혈 아름다워 매우 위안되시리. 그대 심력 기울려 작은 예우라도 다해, 섬세하진 못하나 별안간 먼저 할일 했네. 크고 작음, 관리 백성 따지지 않아, 스스로 세우려 남 의지하지 않았네. 온 종일 두분 부릅떠 지난 치욕 징계하니, 해 달 별빛은 더함없이 밝은 광선 길기만 하네. 나라없이 편안한들 육신은 뉘와 함께 하며, 백성없이 번성한들 육신은 뉘와 누리리. 팔방이 길이 안정되어 이 한 봉분 빛나니, 진실로 정성드리면 깊은 밤도 밝아지 듯. 난초, 국화 좋은건 향기만 아니라 산하가 더욱 좋아서네. 높은 하늘이시여! 약한자 돌보시니, 만세토록 백성 바르게 되리.
정인보 선생이 찬하셨다.
위패를 모신 사당 창의사.
진충문.
문이 닫혀서 들어갈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