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하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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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경기도 양주시 남면 황방리 269
탐방로그
조용하/조용한 형제의 묘소를 찾기 위해 경기 양주시 남면 황방리 269에 왔다. 조소앙 선생의 형제들 중 조용하, 조용주, 조용한 세 분이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았으나, 조용주 선생께서는 중국에서 돌아가셨고, 한국에는 묘소가 없는 상태이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조소앙 선생의 가묘가 있는 경기 양주시 남면 황방리 269를 찾았다.
이곳이 조소앙 선생의 형제 분들의 묘소이고 이 분들도 독립유공자라는 것을 알았다.
조소앙 선생의 형제들 중에서 조용하, 조용주, 조용한 세 분이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으셨다.
한 분은 묘소가 없다고 한다.
중국에서 돌아가셨고, 한국에는 묘가 없다.
조용하·조용은(소앙)·조용주·조용한·조용재(여) 형제를 비롯해 조카들까지 10명이 독립유공자이다.
구심 조용하의 비
1882년 3월 21일 세조때의 생육신 어계 조려의 16대손 조정규와 어머니 박필양의 장자로 태어나다 어려서 조부 성용에게 한학을 수학하고 그후 경성으로 올라가 신학을 익혀 불어, 독어, 영어, 중국어에 능란하다.
실제 소앙, 용주, 용한, 용원, 시원에게 독립사상을 고취하다. 1901년 프랑스및 독일주재공사 관찰사관음을 거쳐 1903년 귀국하여 죽산, 이천, 마전군수등을 역임하다. 1904년 김연원과 혼인 이제, 기록 두남매를 두다.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북경으로 망명 한강림을 조직 만주의 경학사와 연락 항일운동을 하다. 1913년 하와이에서 한국독립단 한인협회등을 조직 1921년 신한민보를 창간하고 만국평화회의 국제사회당대회에 대표로 참가 독립을 위해서 외교, 언론 활동을 통해 조국광복을 위하여 노력하다. 1932년 한중연맹의 강화를 위해 상해로 가던중 일본 코베에서 일경에 피포되어 경성으로 이감 무기형을 언도받고 복역중 신장병으로 1936년에 병보석 적십자병원에서 1937년 3월 3일 조국광복의
기쁨을 모르고 세상을 여의다. 1977년 12월 정부에서는 자주독립과 국가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를 높이 찬양하여 건국훈장 국민장을 추서하다.
1978년 6월 30일 양자 방제와 딸 기연 뜻을 모아 영전에 비를 세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