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충청남도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 491
- 탐방로그
- 한용운 선생의 집은 민족시비공원 내에 있으며, 같은 공원에 애국지사 시비도 있다. 집 주변에는 선생의 시비, 어록비, 동상이 있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한용운 선사 생가지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선사 –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1879.8.29~1944.6.29)은 독립운동가며, 승려이고, 시인으로서 우리나라 근대사의 거봉(巨蜂)으로 자리잡고 있는 인물이다.
홍성출생으로 1905년 백담사에 가서 승려가 된 그는 불교 개혁과 불교의 현실 참여를 주장하였으며, 1919년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다. 1926년 시집 〈님의침묵(沈默)〉을 출판하여 저항문학에 앞장서기도 했다.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선사 –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1879.8.29~1944.6.29)은 독립운동가며, 승려이고, 시인으로서 우리나라 근대사의 거봉(巨蜂)으로 자리잡고 있는 인물이다.
홍성출생으로 1905년 백담사에 가서 승려가 된 그는 불교 개혁과 불교의 현실 참여를 주장하였으며, 1919년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다. 1926년 시집 〈님의침묵(沈默)〉을 출판하여 저항문학에 앞장서기도 했다.
만해 선생의 친필 轉大法輪(전대법륜)과 님의 침묵 시가 걸려있다.
萬海 韓龍雲 先生 生家 遺址(만해 한용운 선생 생가 유지)
선생은 서기 1879년 청주후인 한응준의 2자로 이곳에서 태어나셨다. 불교지도자이시며 시인이신 선생은 기미독립운동 33인 대표의 일인이신 애국지사로 조국광복을 위해 민족을 일깨우시고 지도하시다 서기 1944년 6월 66세에 별세하시다.
묘지 : 서울 망우리 공동묘지 상봉
저서 : 님의 침묵(沈默) 흑풍(黑風) 후회(後悔) 박명(薄命)
묘지 : 서울 망우리 공동묘지 상봉
저서 : 님의 침묵(沈默) 흑풍(黑風) 후회(後悔) 박명(薄命)
사당인 만해사의 외삼문인 禁門(금문)
卍海祠(만해사)
생가 앞에는 어록비, 시비가 있었다.
나루ㅅ배와 行人(행인)
나는 나루ㅅ배
당신은 行人(행인)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음니다
나는 당신을 안ㅅ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깁흐나 엿흐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감니다.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마지며
밤에서 낫가지 당신을
기다리고 잇슴니다
당신은 물만 건느면 나를
도러보지도 안코 가심니다 그려
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아러요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어감니다
나는 나루ㅅ배
당신은 行人(행인)
나는 나루ㅅ배
당신은 行人(행인)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음니다
나는 당신을 안ㅅ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깁흐나 엿흐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감니다.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마지며
밤에서 낫가지 당신을
기다리고 잇슴니다
당신은 물만 건느면 나를
도러보지도 안코 가심니다 그려
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아러요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어감니다
나는 나루ㅅ배
당신은 行人(행인)
韓龍雲 詩碑(한용운 시비)
알 수 없어요
바람도 없는 공중에 垂直(수직)의 파문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塔(탑) 위의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뿌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구비구비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해를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詩(시)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알 수 없어요
바람도 없는 공중에 垂直(수직)의 파문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塔(탑) 위의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뿌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구비구비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해를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詩(시)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한용운(1879.7.12~1944.5.9)
선생의 초명은 유천 법명은 용운 법호는 만해 청주한씨 응준의 차남으로 홍성이 낳은 위대한 애국자 시인이시다. 선생은 약년에 부친이 동학 봉기군을 토벌하자 설악산에 숨어 불문에 귀의하다. 1913년 불교 유신론을 부르짖고 14년에 대장경을 열람하여 불교대전을 엮으시다. 19년 3.1만세시위를 33인과 같이 주도하시며 독립선언서의 공약 3장을 쓰시다. 26년 현대시 사상 기념비적인 시집 님의 침묵을 펴내시다. 그 뒤에도 지조를 굽히지 않고 굳굳히 서시다. 일제의 패망을 앞두고 44년 숙환으로 세상을 뜨시니 향년이 66세러시다. 언제나 선각자는 외로운 것이나 끝내 선생의 메아리는 천추에 빛나리로다.
이 비의 건립은 선생을 경모하는 전국 동호자의 협찬을 얻어 연세대학교 신동욱 교수가 주관하고 비 음기는 학술원 회원 김동욱이 짓고 쓰다.
선생의 초명은 유천 법명은 용운 법호는 만해 청주한씨 응준의 차남으로 홍성이 낳은 위대한 애국자 시인이시다. 선생은 약년에 부친이 동학 봉기군을 토벌하자 설악산에 숨어 불문에 귀의하다. 1913년 불교 유신론을 부르짖고 14년에 대장경을 열람하여 불교대전을 엮으시다. 19년 3.1만세시위를 33인과 같이 주도하시며 독립선언서의 공약 3장을 쓰시다. 26년 현대시 사상 기념비적인 시집 님의 침묵을 펴내시다. 그 뒤에도 지조를 굽히지 않고 굳굳히 서시다. 일제의 패망을 앞두고 44년 숙환으로 세상을 뜨시니 향년이 66세러시다. 언제나 선각자는 외로운 것이나 끝내 선생의 메아리는 천추에 빛나리로다.
이 비의 건립은 선생을 경모하는 전국 동호자의 협찬을 얻어 연세대학교 신동욱 교수가 주관하고 비 음기는 학술원 회원 김동욱이 짓고 쓰다.
충남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 491 민족시비공원은 한용운 선생의 집이 있는 곳이다.
한용운 선생 생가지(韓龍雲 先生 生家址)
지정별: 기념물 제75호
지정년월일: 1989년 12월 29일
위치: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
이 곳은 일제 식민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며 불교(佛敎)시인인 한용운(韓龍雲, 1879~1944) 선생께서 1879년(고종 16년)에 태어난 곳이다. 선생은 1904년에 강원도 인제 내설악산의 오세암(五歲菴)에 출가하고 1905년 백담사(百潭寺)에서 득도하였다. 계명(戒名)은 봉완(奉玩)이고 법호(法號)는 만해(萬海), 법명(法名)은 용운(龍雲)이다. 1919년 3·1 독립운동을 이끈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獨立宣言書)의 공약3장(公約三章)을 작성하였다.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 체포되어 3년형을 선고받았다. 1926년 시집 "님의 침묵"을 출간하여 저항문학(抵抗文學)에 앞장서고 민족혼(民族魂)을 깨우려고 노력하였다. 1944년 5월 9일 서울 성북동(城北洞) 심우장(尋牛莊)에서 66세를 일기로 입적(入寂)하니 유해는 망우리(忘憂里)에 안장되었다. 선생은 세상을 마칠 때까지 불교(佛敎)를 통한 애국 청년운동과 일제에 항거하는 독립운동사상을 북돋워 일으키는데 온 힘을 기울였다. 1962년 건국공로훈장(建國功勞勳章)이 추서되었다.
지정별: 기념물 제75호
지정년월일: 1989년 12월 29일
위치: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
이 곳은 일제 식민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며 불교(佛敎)시인인 한용운(韓龍雲, 1879~1944) 선생께서 1879년(고종 16년)에 태어난 곳이다. 선생은 1904년에 강원도 인제 내설악산의 오세암(五歲菴)에 출가하고 1905년 백담사(百潭寺)에서 득도하였다. 계명(戒名)은 봉완(奉玩)이고 법호(法號)는 만해(萬海), 법명(法名)은 용운(龍雲)이다. 1919년 3·1 독립운동을 이끈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獨立宣言書)의 공약3장(公約三章)을 작성하였다.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 체포되어 3년형을 선고받았다. 1926년 시집 "님의 침묵"을 출간하여 저항문학(抵抗文學)에 앞장서고 민족혼(民族魂)을 깨우려고 노력하였다. 1944년 5월 9일 서울 성북동(城北洞) 심우장(尋牛莊)에서 66세를 일기로 입적(入寂)하니 유해는 망우리(忘憂里)에 안장되었다. 선생은 세상을 마칠 때까지 불교(佛敎)를 통한 애국 청년운동과 일제에 항거하는 독립운동사상을 북돋워 일으키는데 온 힘을 기울였다. 1962년 건국공로훈장(建國功勞勳章)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