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효촌리 산67-1
- 탐방로그
- 애국지사 이용화(李龍和) 선생의 묘소를 찾으러 양주시 광적면 효촌리 산67-1에 왔다. 길을 헤매고 있을 때 운 좋게도 사적의 위치를 알고 계시는 주민을 만날 수 있었다. 가래비 3.1만세때 현장에서 3분이 순국을 하셨는데, 그 세 분 중의 한 분이 이용화 순국선열이라는 것까지 알고 계신 분이었다. 안타깝게도 현장에서 순국하신 세 분 중 다른 두 분의 묘소는 전혀 파악이 안 되고 있다고 한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오른쪽에 있는 묘소가 입양 봉사손이 되신 應玉의 묘소였다.
양주시 광적면 효촌리 산67-1 애국지사 이용화(李龍和)의 묘소를 찾았다.
하지만 이 주소는 왼쪽부터 오른쪽 산 전체가 하나의 번지이다.
위성지도를 보면서 묘소가 보이는 곳을 찾아가려고 한다.
하지만 이 주소는 왼쪽부터 오른쪽 산 전체가 하나의 번지이다.
위성지도를 보면서 묘소가 보이는 곳을 찾아가려고 한다.
제일 먼저 왼쪽을 올라가 보았지만 애국지사의 묘소가 아니었다.
이번에는 오른쪽 능선을 찾아볼것이다. 그런데 오른쪽 보이지 않는 산 너머까지도 같은 번지이다.
저 산길을 타고 넘어가서 보이는 집 뒷편에 있다.
산의 능선에 있는 묘소들. 조선조 중기의 묘소들이었다.
능선을 넘어가자 집들이 보였고, 그 뒷편에 묘소가 보였다.
오래전에 세운 묘비와 새롭게 세운 묘비가 나란히 서있다.
殉國烈士全州李公龍和之墓,配孺人海州吳氏合祔(순국열사 전주이공 용화지묘, 배 유인 해주오씨합부)
공은 성격이 호탕하시고 의협심이 강하신 분으로 애주하셨으며 경술국치후 일제의 식민정책을 불평하시든중 1919년 기미만세운동이 전개되자 자진참가하야 지금 광적면 추교시장 속칭 만세답에서 제지하는 일헌병과 격투하시다가 적의 흉탄으로 순사하시니 오호라 시년이 40세로서 슬하에 3녀뿐 후사가 無하심으로 재당질 응옥이 입양봉사하는중 장손 안교가 모선성심으로 표석을 봉립하기로 기 당시 참가 목격자로서 대략을 기록하는 바니다.
1979년 기미10월일 삼종질 응세 근식
1979년 기미10월일 삼종질 응세 근식
殉國烈士全州李公龍和,孺人海州吳氏之墓(순국열사 전주이공 용화, 유인 해주오씨 지묘)
공은 성격이 적극적이시고 의협심이 강하셨으며 체격이 장대하셨던 분으로 1910년 경술국치 후 일제의 식민정책에 울분을 품고 계시던 중 1919년 3월 1일 3.1독립운동을 시작으로 동년 3월 5일 광적면 가남리 속칭 만세답에서 전개된 독립만세 시위에 일장기를 급히 개조하여 태극기를 만들고 부락주민을 동원하여 만세시위에 참가하여 선봉에서 시위를 주도하시던 중 일본헌병과 충돌하여 격투중 적의 총탄에 순국하셨으며 당시 40세로 슬하에 3녀뿐 후사가 無하여 재당질 응옥이 입양 봉사케 되었다. 공과 함께 백남식 김진성공이 순국하였으며 지금 당시 세분의 고귀한 애국정신과 독립만세 역사의 현장을 기념하는 기념비가 가남리에 세워져있다.
부 1879년 음 12월 24일 생, 1920년 양 3월 5일 졸
모 1879년 음 3월 8일 생, 1935년 2월 2일 졸
자 응옥, 손 안교, 정교, 철교
모 1879년 음 3월 8일 생, 1935년 2월 2일 졸
자 응옥, 손 안교, 정교, 철교
조선국 제2대 정종대왕의 4남 선성군 15대손
순국열사 전주이공 용화 묘비문
순국열사 전주이공 용화 묘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