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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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충청남도 청양군 화성면 신정리 334-1
탐방로그
청양군 화성면 신정리 334-1에 위치한 청대사는 순흥안씨 문중 출신 네 분 애국지사 안창식, 안항식, 안병찬, 안병림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1994년 건립하였다. 청대사는 안병찬 생가터 바로 옆에 자리한다. 안병찬의 생가터에서 안병찬의 묘(구 묘비), 안병림의 묘까지는 192m로, 도보로 3분 정도 소요된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이 곳 청대사는 순흥안씨 문중 출신 네 분 애국지사(건국훈장 애족장 안창식. 건국훈장 애국장 안항식. 건국훈장 애국장 안병찬. 건국훈장 애족장 안병림)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1994년 충청남도의 지원을 받아 순흥안씨종친회에서 건립했다. 안창식(安昌植) 선생은 두 아들 병찬(炳瓚).병림(炳琳)과 함께 1895년 을미의병에 투신했다. 선생은 1895년 여름부터 비밀리에 건의할 뜻을 두고서 광호(廣湖) 등지로 가서 저자 사람을 앞에서 먼저 일어날 계획을 세우기도 하였고, 홍주의진의 선구자들인 박창로.이봉학.이세영 등과 긴밀히 연락을 취했다. 아들 병찬이 1895년 12월 1일 홍주성에 입성할 계획을 세우고 찾아오자 채광묵과 함께 모집해 놓은 민병 180명을 내놓아 홍주의병을 거의하도록 도와 의진이 패하자 피체되었다. 안병찬 선생은 1895년 을미의병을 주도하여 3년형을 선고 받고 고종의 특지로 석방되었으며, 1906년 민종식의 병오홍주의병의 참모로 활약하여 옥고를 치른 후 1919년 파리만국강화회의에 장서서명사건으로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안병림 선생은 민종식의 병오홍주의병 당시 참모사 및 돌격장으로 활약하였으며, 안항식 선생은 1906년 4월25일 병오홍주의병 당시 참모사로 활약하여 일제에게 체포 후 대마도로 후송 감금되었다가 4년만에 귀국했다.
충대사 앞에 몇 개의 비석들이 놓여있었다.
의병장 우국혈시비 - 규당 안병찬

지사는 어려운 환경을 잊지않고, 용사는 목숨바칠것 잊지않네.
차라리 머리없는 귀신될망절, 머리깍은 사람은 아니되련다.
의리에 죽으니 무엇을 한탄하겠는가, 다만 노친이 당상에 계시는데 봉양을 못하니 그것이 한스럽다.

을미년 홍주에서 기의, 의병장으로 활동하시다가 피검.이 시는 옥중에서 자결을 꾀하였으나 소생후 목에서 흐르는 피를 찍어 쓴 혈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