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오홍주의병전적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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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충청남도 청양군 화성면 산정리 165-8
탐방로그
병오홍주의병전적비는 화성남양파출소 내부에 있으며, 대중교통으로 탐방할 시에는 산정리 버스정류장에서 하차하면 된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병오홍주의병전적비
일제침략군이 우리의 강토를 짓밟고 나라의 외교권을 빼앗아 갔을때 이곳 홍주 유생과 농민들은 분연히 일어나서 적수공권 의기를 높이 들었다. 1906년 3월 13일 홍주의병 3천명은 예산군 광시면 구시장에 대장단을 마련하고 엄숙히 천제를 올렸으니 이것이 병오 홍주의병의 시초이다. 비록 손에는 낡고 우둔한 무기를 들었으나 나라위한 구국일념만은 하늘을 찌를듯 뜨겁게 다아 올랐다. 그들은 전 참판 민종식을 창의대장으로 삼고 홍순대를 종사관 박창로를 참모관에 안병찬을 행군사마에 유준근을 유회장에 성재한을 운량관에 신현두를 우익장에 추대하였다. 이어 군오를 정비하여 홍주성을 향해 진격하였다. 선두에는 "존양토복"이라고 쓴 깃발
을 내걸고 홍주성 조양문을 내려다보는 하오령에 유진하였다. 이 때에 왜군과 관군은 의진을 향해 맬렬한 사격을 가하였으며 의병들은 이에 맞서 싸웠으나 역부족으로 퇴진하였다. 홍주공격에 실패한 의병군은 광시에서 진용을 가다듬어 재차 공주성을 향해 출진하였다. 먼저 청양을 향해 행진하였는데 이때 공주의 왜군과 관군이 의병의 진로를 차단하였다. 이에 홍주의병은 방향을 바꾸어 청양군 화성면으로 진출하였고 모듬내에 유진하였다. 1906년 3월 17일 새벽 왜군이 합천의 의진을 기습하자 의병들은 무한천을 사이에 두고적과 치열한 총격전을 벌였다. 이 합천전투는 병오 홍주의병의 첫 전투로 기억되고 있다. 비록 의병의 수는 3천명에 이르렀으나 그 무기가 무디고 전투경험마저 없어 정예의 왜군에게 패하고 말았다. 지금까지도 이 전투에서 몇 사람이 전사하였는지 알려져 있지않고 다만 안병찬 박창로를 비롯한 수백명의 의병들이 투옥되었다는 기록만 남아 있다. 그러나 이 희생이 결코 헛되지 않아 곧이어 4월에 홍산에서 제2차 홍주의병이 일어나 마침내 홍주성 점령에 성공하였다. 이기고 지는것을 헤아리지 않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의병정신이 바로 이곳 합천땅에서 싹텃으니 여기 전적비를 세워 유혼을 위로하고 후세의 귀감으로 삼는다.
전적비 건립 취지문
구봉과 조처간 무한천을 중심으로 펼쳐진 이 땅에 전적비를 세우게 되었으니 이 어찌 우연이이라 하겠습니까 역산검수의 험로도 보지않으시고 일제에 항거하시다 흉탄에 쓸어지시고 피검되시어 가혹한 형벌에 시달리신 애국선열들의 희생의 대가라 생각됩니다. 이 처럼 위대하신 의렬사들의 불굴의 호국정신을 후세들에게 계승시키고 이곳이 불망의 땅임을 후대에 길이 전하고자 하는 뜻에서 특지가의 정성으로 이 전적비를 건립하게 되었습니다. 성원해주신 청양군 그리고 화성향우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청양군 화성면 산정리 165-8 화성 남양파출소 내에 있는 병오홍주의병 전적비를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