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곡3.1운동기적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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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충청남도 청양군 정산면 백곡리 72-1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어서 시장을 돌며 목이 터져라 외쳐 대는 독립만세의 함성에 정산의 천지가 진동하였다. 적의 헌병이 주동자들을 강제로 연행하자 700여명으로 늘어난 시위군중들은 격분하여 그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물밀듯이 헌병주재소로 쇄도하니 당황한 헌병들의 발포로 2명의 사상자가 나고 수 많은 사람들이 체포되었다. 이 마을 의사들에 의하여 불붙은 연3일간의 정산의거로 순국한 분이 7명이요 부상한 분이 4명 옥고를 치른분이 5명에 달하니 그 규모와 장열함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아! 세월은 흘러 잃었던 조국을 찾기위해 맨주먹으로 총칼앞에 항거했던 3.1운동도 어언 86년이 지나니 정산의거에 앞장섰던 의사들도 다 고인이 되셨다. 광복 40주년이 되는 뜻깊은 3.1절을 맞아 그날의 기록을 새겨 마을의 표사으로 삼고자 거룩한 자리에 이 비를 세운다. 같은 마을에서 나고 자란 인연이 깊은 백실가족들이여 자랑스러운 이 마을에 태어난 긍지를 가지고 빛나는 진통을 길이길이 이어나가자. 그리고 온누리에 우리 고장을 빛낼 큰 동량들이 배출하여 주기를 빌자.
백곡출신 3.1운동 의사

1년간의 옥고를 치른 분
홍범섭 임의재 윤석희 홍세표 박상종

90도 내지 70도의 태형을 받은 분
조종원 박춘서 윤기중 임철재 윤봉학 임창순
이건직 우달명 김세환 이태호 김창환 이희길

왜병의 총칼에 중상을 당한 분
김필현 윤구학
충남 청양군 정산면 백곡리 72-1 마을 입구에 백곡3.1운동 기적비가 있었다.
백곡3.1운동기적비

이 기적비는 정산만세운동에 참여했던 백곡리 주민의 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1985년 3월 1일 백곡3.1운동기적비건립위원회에서 건립했다. 정산만세운동은 1919년 4월 5~6일간의 청양군 정산면 장날에 700여 명의 주민이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면서 시위행진을 벌이다가 일경의 무력 탄압에 많은 사상자를 낸 시위운동이다. 이 기적비는 백곡리 출신으로 정산만세운동을 주도하여 1년간의 옥고를 치른 홍법섭 등 5명과 태형 90도 내지 70도를 받은 조종원 등 12명, 왜병 총칼에 중상을 당한 김필현 등 2명의 명단이 각인되어있다.
비석의 중심에 세로로 '백곡삼일운동기적비'라고 새겨져 있고, 그 밑의 단에 '백실항일애국지사 19인의 단'이라는 의미의 글귀가 있다.
계봉산 정기를 타고 뻗어 내린 가파른 산줄기가 금강을 가까이 바로다보는 곳에서 금성철벽을 이룬 사릉성 기슭에 아늑하게 자리잡은 여기 백실은 백제의 천해길지요 고을이 있었던 유서깊은 마을이다. 마을 사람들은 산성처럼 기백에 넘치어 예부터 나라를 지키는 일에 앞장서 왔다. 임진왜란을 당하여는 두촌 임정식선생이 백여명의 의병을 이끌고 중봉 조헌선생의 막하에 참전하여 청주싸움에 이기고 금산 전투에 나아가 왜적을 무찌르다 순절하셨다. 1919년 3.1운동이 요원의 불길처럼 온 나라에 번져 갈 때에는 마침 서울에서 독립선언문을 입수해 온 약관의 소석 홍범섭공이 임의재 윤석희 홍세표 박상종 조종원 박춘서 윤기중 임철재 윤봉학 임창순 이건직 우달명 김세환 이태호 김필현 윤구학 제공들과 정산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운동을 벌일 것을 결의하고 드디어 4월 5일 오후 세시경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면서 시장에 돌입하였다. 100여명의 장꾼들이 이에 호응하니 한 덩어리가 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