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 가래비3.1운동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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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가납리 709-4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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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4318년 서기 1985년 12월 일
가래비 삼일운동기념비 건립위원회
건립위원회 명단이 기재되어 있다.
경기 양주시 광적면 가납리 709-4 승리교사거리 가래비 3.1.운동기념비
가래비 三一運動 紀念碑(가래비 삼일운동 기념비)
우리 고장 선인들이 일제 식민통치에 대항하여 3.1만세 독립운동을 일으켰던 이곳 양주 가래비만세배미 옛터에 3.1독립운동기념비를 세워 숭고한 선열의 뜻을 기리며 우리들의 나라 사랑의 마음을 가슴깊이 가다듬는다. 여기 양주 가래비에서 3.1운동을 전개한 것은 1919년 3월에서 4월에 걸쳐서였다. 그에 앞서 3월1일 서울에서 민족대표들이 독립선언서를 발표하고 한국의 독립을 국내외에 선언하자 이는 거족적인 독립운동으로 확산되었는데 이때 가래비에서도 힘찬 만세운동을 일으켰던 것이다. 3월 18일 광적면을 중심으로 사방에서 운집한 주민 950명이 독립지사 백남식, 이용화, 김진성 선생의 지휘로 만세배미에 모여 대한독립만세를 소리높이 외쳤다. 그러나 이 평화적인 시위에 대하여 야만적인 일본헌병이 무자비한 총격을 가하여 앞장섰던 세분이 현장에서 순국하시고 40여 명이 부상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우리 선인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다시 4월 3일에 1400여명이 모여 만세운동을 계속함으로써 드높은 애국정신을 나타냈던 것이다. 이러한 가래비의 3.1운동은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고 우리 향토의 전통적인 항일운동을 기반으로 일어난 것이었다. 이 고장은 임진왜란 때 신각 장군이 게네미고개에서 왜군을 섬멸하고 한말에는 의병장 윤인순, 정용대 선생이 의병활동을 하시던 곳이다. 이러한 가래비의 항일의식의 전통이 3.1만세운동의 정신적 기반이 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우리고장 가래비가 역사적으로 항일운동 전개의 중심이 되고 마침내 3.1운동의 거센 발발지였다는검에 무한한 자랑과 자부심을 느낀다. 우리가 이곳 가래비에 3.1운동기념비를 세우는 뜻도 독립만세운동을 일으킨 선인들의 빛나는 민족정신을 기리기 위해서이다. 우리들은 이 기념비 앞에 엄숙히 머리 숙여 선열들의 3.1운동의 정신을 이어받아 우리 향토를 아끼고 가꾸며 나아가 국가와 민족의 발전을 위하여 모든 힘을 기울일 것을 다짐하는 바이다.
이 글은 서울대학교 사학교수이신 변태섭 박사가 짓고 글씨는 근당 양택동 선생께서 쓰다 1985.12
건립 후기
이곳은 일제의 혹독한 식민 탄압 속에서도 겨레의 염원인 국권 회복과 자주 창조 개혁의 민족정신을 계승하고자 결연히 궐기했던 우리 고장의 3.1운동 가래비 만세배미 모퉁이입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일제와 항쟁한 백남식 이용화 김진성 세 분의 애국지사를 무자비한 일본 헌병의 총탄에 잃고 수많은 주민이 피 흘린 수난의 현장 만세배미야말로 민족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일깨우는 역사의 현장이라 하겠읍니다. 우리는 이 곳을 영원히 기념하여 내 고장의 자랑스러운 향토애 발현의 거울로 삼아야 하겠으며 선조들의 거룩한 애국일념을 되새기는 후세 교육의 도장으로 승화시켜야 하겠읍니다. 이에 우리는 이 고장의 빛나는 3.1독립운동의 터전에 그날의 함성을 되살려 살아 숨쉬는 민족정신을 기리고 새로운 시대의 사명인 통일 조국 실현을 위한 겨레의 예지와 슬기를 모아 영광스러운 새 역사 창조의 디딤돌로 삼고자 여기에 기념비를 세워 그 뜻을 밝히면서 건립에 참여한 강호 제현의 방명과 그 경위를 새깁니다. 이 기념비는 1985년 4월 9일 정승우 양주군수의 협조로 가래비 3.1운동기념비 건립추진위원회가 발족되어 그간 노구를 무릅쓴 동은 백인현 옹의 심혈을 기울인 열의와 조태훈 건립위원장의 헌신적인 노력 속에 이종윤 면장 김태식 유광렬 유지의 남다른 주선이 있었고 내 고장을 아끼는 군민 모두의 뜨거운 호응으로 마련된 성금과 군관의 성원으로 건립되었읍니다.
가래비 3.1운동 기념비 건립위원회 지도위원 경기도 학예연구관 강대욱 근기
서기 1985년 12월 일
지도위원을 비롯한 건립위원 및 추진위원, 협찬자의 명단이 적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