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유량동 산4-3
- 탐방로그
- 충청남도 천안에 위치한 독립투쟁의사 광복회원 기념비이다. 천안 출신의 독립투쟁의사이자 대한광복회원이었던 장두환, 유창순, 성달영, 유중협, 강석주, 조종철, 김정호를 기리는 비이다. 독립투쟁의사 광복기념사업회가 1969년 10월에 건립한 것으로, 이전에는 천안삼거리공원에 있었던 것이 태조산공원으로 이전되었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張斗煥(장두환) 의사, 庾昌淳(유창순) 의사
신명도 두려울사 백의민의 피를 말리고 살을 에어가던 귀축의 무리를 쫓고 민족의 내일을 위하여 횃불을 높이 들어 겨레의 자유와 조국의 독립을 소리높이 외치시다 쓰러진 천안출신 항일독립투사 일곱분을 이에 남긴다. 서기 1913년 일제의 속박에서 암담한
신명도 두려울사 백의민의 피를 말리고 살을 에어가던 귀축의 무리를 쫓고 민족의 내일을 위하여 횃불을 높이 들어 겨레의 자유와 조국의 독립을 소리높이 외치시다 쓰러진 천안출신 항일독립투사 일곱분을 이에 남긴다. 서기 1913년 일제의 속박에서 암담한
趙鍾哲(조종철) 의사, 柳重協(유중협) 의사
국운의 미래를 구하시려 망연히 큰뜻을 품으시고 대한광복단을 조직하시어 국내로는 독립운동자금을 모으시고 밖으로는 만주 중국에 계신 독립군과 손 잡으시고 바람속에서 밥짓고 이슬 속에 잠자며 국권회복을 방해하는 친일분자들과 싸워 독립의 의분을 터트리시고 왜헌의 간담을 서늘케하셨으며 나아가 불굴의 인류정의와 불굴의 민족기개를 선양하여
국운의 미래를 구하시려 망연히 큰뜻을 품으시고 대한광복단을 조직하시어 국내로는 독립운동자금을 모으시고 밖으로는 만주 중국에 계신 독립군과 손 잡으시고 바람속에서 밥짓고 이슬 속에 잠자며 국권회복을 방해하는 친일분자들과 싸워 독립의 의분을 터트리시고 왜헌의 간담을 서늘케하셨으며 나아가 불굴의 인류정의와 불굴의 민족기개를 선양하여
姜奭周(강석주) 의사, 金鼎鎬(김정호) 의사
3.1운동의 효시가 되었으니 님들의 공 청사에 빛나리라. 왜헌의 매서운 손길에 묶이시어 법정투쟁하시다가 그 옥고가 옥사에 이르시니 님들 이 피를 남기신 임의 나라 이제는 시들던 무궁화 다시 살아나 혈고를 뿌리신 씨 다시 싹트고 정의를 복 돋우어주신
3.1운동의 효시가 되었으니 님들의 공 청사에 빛나리라. 왜헌의 매서운 손길에 묶이시어 법정투쟁하시다가 그 옥고가 옥사에 이르시니 님들 이 피를 남기신 임의 나라 이제는 시들던 무궁화 다시 살아나 혈고를 뿌리신 씨 다시 싹트고 정의를 복 돋우어주신
成達永(성달영) 의사
그 가지가지마다 새 꽃이 되었나이다.
서기 1965년 10월 독립투쟁의사 광복회원기념사업회 건립
그 가지가지마다 새 꽃이 되었나이다.
서기 1965년 10월 독립투쟁의사 광복회원기념사업회 건립
태조산공원을 찾았다.
천안보훈공원
독립투쟁의사 광복회원 기념비 / 관리번호 : 26--1-08 / 관리자 : 천안시
우리고장 출신 독립투쟁의사 대한광복회원 장두환.유창순.성달영.유중협.강석주.조종철.김정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9년 10월에 건립한 비이다. 대한광복회는 풍기광복단과 조선국권회복단이 1915년 통합하여 결성된 혁명단체로서 1910년대 헌병경찰제에 의한 일제의 폭압적인 무단정치가 자행되는 암울했던 시기에 폭력혁명적 투쟁을 전개함으로써 우리민족에게 독립에의 희망을 잃지 않게 하였다. 뿐만 아니라 일제의 조선토지조사사업으로 인해 대다수 민중들은 헐벗고 굶주려 감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안일만을 위해 민족성을 포기해 가는 친일 부호배들에게 철퇴를 가함으로써 민족정기가 살아잇음을 표출하였다.
더욱이 대한광복회의 의열투쟁 방략은 이후 암살단.의열단.한인애국단 등으로 이어져 독립운동을 크게 발전시켜 간 역사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우리고장 출신 독립투쟁의사 대한광복회원 장두환.유창순.성달영.유중협.강석주.조종철.김정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9년 10월에 건립한 비이다. 대한광복회는 풍기광복단과 조선국권회복단이 1915년 통합하여 결성된 혁명단체로서 1910년대 헌병경찰제에 의한 일제의 폭압적인 무단정치가 자행되는 암울했던 시기에 폭력혁명적 투쟁을 전개함으로써 우리민족에게 독립에의 희망을 잃지 않게 하였다. 뿐만 아니라 일제의 조선토지조사사업으로 인해 대다수 민중들은 헐벗고 굶주려 감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안일만을 위해 민족성을 포기해 가는 친일 부호배들에게 철퇴를 가함으로써 민족정기가 살아잇음을 표출하였다.
더욱이 대한광복회의 의열투쟁 방략은 이후 암살단.의열단.한인애국단 등으로 이어져 독립운동을 크게 발전시켜 간 역사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독립투쟁의사 광복회원기념비 일명 광복7의사기념비 (성달영, 유중협, 장두환, 조종철, 김정호, 유창순, 강석주)
신명(神明)도 두려울사 백의민(白衣民)의 피를 말리고 살을 에어가던 귀축(鬼畜)의 무리를 쫓고 민족의 내일(來日)을 위하여 횃불을 높이 들어 겨레의 자유(自由)와 조국(祖國)의 독립(獨立)을 소리 높이 외치시다 쓰러지신 천안(天安) 출신 항일 독립투사(抗日獨立鬪士) 일곱분을 이에 남긴다.
서기(西紀) 1913년 계축(一九一三年 癸丑) 일제(日帝)의 속박(束縛)에서 암담(暗澹)한 국운(國運)의 미래(未來)를 구하시려 망연(茫然)히 큰 뜻을 품으시고 대한 광복단(大韓光復團)을 조직(組織)하시어 국내(國內)로는 독립운동 자금(獨立運動資金)을 모으시고 밖으로는 만주(滿洲) 중국(中國)에 계신 독립군(獨立軍)과 손을 잡으시고 바람속에서 밥짓고 이슬 속에 잠자며 국권 회복(國權回復)을 방해(妨害)하는 친일 분자(親日分子)들과 싸워 독립(獨立)의 의분(義憤)을 터트리시고 왜헌(倭憲)의 간담(肝膽)을 서늘케 하셨으며 나아가 불굴(不屈)의 인류 정의(人類正義)와 불굴(不屈)의 민족 기개(民族氣槪)를 선양(宣揚)하여 3·1 운동(三·一運動)의 효시(嚆矢)가 되었으니 님들의 공(功) 청사(靑史)에 빛나리라.왜헌의 매서운 손길에 묶이시어 법정 투쟁(法廷鬪爭)하시다가 그 옥고(獄苦)가 옥사(獄死)에 이르시니 님들이 피를 남기신 임의 나라 이제는 시들던 무궁화 다시 되살아 혈고(血苦)를 뿌리신 씨 다시 싹트고 정의(正義)를 북돋우어주신 그 가지가지마다 새싹에 새꽃이 되었나이다.
서기 1969년 10월(西紀 一九六九年 十月)
독립 투쟁 의사 광복 기념 사업회 건립(獨立鬪爭義士光復記念事業會 建立)
신명(神明)도 두려울사 백의민(白衣民)의 피를 말리고 살을 에어가던 귀축(鬼畜)의 무리를 쫓고 민족의 내일(來日)을 위하여 횃불을 높이 들어 겨레의 자유(自由)와 조국(祖國)의 독립(獨立)을 소리 높이 외치시다 쓰러지신 천안(天安) 출신 항일 독립투사(抗日獨立鬪士) 일곱분을 이에 남긴다.
서기(西紀) 1913년 계축(一九一三年 癸丑) 일제(日帝)의 속박(束縛)에서 암담(暗澹)한 국운(國運)의 미래(未來)를 구하시려 망연(茫然)히 큰 뜻을 품으시고 대한 광복단(大韓光復團)을 조직(組織)하시어 국내(國內)로는 독립운동 자금(獨立運動資金)을 모으시고 밖으로는 만주(滿洲) 중국(中國)에 계신 독립군(獨立軍)과 손을 잡으시고 바람속에서 밥짓고 이슬 속에 잠자며 국권 회복(國權回復)을 방해(妨害)하는 친일 분자(親日分子)들과 싸워 독립(獨立)의 의분(義憤)을 터트리시고 왜헌(倭憲)의 간담(肝膽)을 서늘케 하셨으며 나아가 불굴(不屈)의 인류 정의(人類正義)와 불굴(不屈)의 민족 기개(民族氣槪)를 선양(宣揚)하여 3·1 운동(三·一運動)의 효시(嚆矢)가 되었으니 님들의 공(功) 청사(靑史)에 빛나리라.왜헌의 매서운 손길에 묶이시어 법정 투쟁(法廷鬪爭)하시다가 그 옥고(獄苦)가 옥사(獄死)에 이르시니 님들이 피를 남기신 임의 나라 이제는 시들던 무궁화 다시 되살아 혈고(血苦)를 뿌리신 씨 다시 싹트고 정의(正義)를 북돋우어주신 그 가지가지마다 새싹에 새꽃이 되었나이다.
서기 1969년 10월(西紀 一九六九年 十月)
독립 투쟁 의사 광복 기념 사업회 건립(獨立鬪爭義士光復記念事業會 建立)
獨立鬪爭義士光復會員記念碑
광복투쟁의사광복회원기념비
광복투쟁의사광복회원기념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