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내 독립만세운동 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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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병천리 산73-2
탐방로그
1919년 4월 1일 아우내장터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다 순국한 수많은 분들의 애국애족 정신을 기리고, 그날을 기념하기 위하여 아우내장터가 내려다 보이는 구미산에 1947년 류관순열사기념사업회에서 기념비를 세운 것이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기미 독립 운동때 아내서 일어난 장렬한 자최라(기미 독립 운동때 아우내서 일어난 장렬한 자취라).
긔미 삼월 일일 독립선언이 나며 국내,국외 만세소리 서로 연하얏었다. 그 가운데도, 충남 목천 아내 장터일은 가장 장렬한 운동의 하나다. 그날 적의 총칼에 넘어진 이만 노소남녀 스므분이요 옥에서 궂긴이 한분이니 이 한분이 곧 어린 녀학생 유관순, 열일곱에 이 일을 일으켰다. 음력 삼월 일일은 아우내장이다. 어린 녀학생의 높은 목소리로 대한독립만세를 부르자 온 장터가 만세속에 들었다. 독립정신 내미는 앞에 총칼이 보이지 아니하니 마츰내 많은 피가 흘렀다. 유관순은 잡히었다. 묶어드는 여러사람을 보더니 소리를 높여
오늘 일은 다 내다. 적이 보니 어린 녀학생이다. 일은 크다. 나는 적다. 온갖 악형을 다하며 누가 한 것을 대라고 하?으나 오즉 내다라고 할 뿐이었다. 그 아버지 유중권과 어머니 이씨 그 자리에서 총살을 당하고 유관순은 끝끝내 굴하지 아니하야 얼마 아니하야 궂기니 잡히던 이듬애 구월이다.
처음 일어나던 날 유씨집 부부보다 먼저 김구응은 그 어머니 최씨와 모자 함께요. 조인원, 김상헌, 서병순, 박상규, 전치관, 한상필, 윤희천, 유중오, 윤태영, 이성하, 박병호, 신을우, 박유복, 박영학, 방치석(방치성) 박준규다.
한날
적의 총칼에 넘어진 분들이니 응해서 일어난 이, 일으킨 사람과 둘이 아니요. 이듬해 옥사가 그 날의 죽음과 다름이 없다. 형제야, 자매야, 선렬들 의 피빛이 아즉것 새롭다. 이 좌최를 돌에도 사기거니와 서로들 마음에 사기라.

대한민국 이십구년 십월
뎡인보는 짓고 김충현은 쓰다.
유관순기념사업회 세움.
충남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병천리 산 73-2 구미산 아우내 독립만세운동 기념비를 찾아왔다.
위 기념비문은 민족사학자이신 위당 정인보 선생이 지었고 기념비는 1947년에 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