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충청남도 예산군 예산읍 예산리 526-2
- 탐방로그
- 윤봉길 열사비는 충청남도 예산군 예산경찰서 정문 앞에 위치해있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대한민국 정부 감찰위원장 령인보는 짓다. 정동공립중학교 교사 김충현은 쓰다.
왜적이 우리를 짓밟고 또 중국을 노리여 우리 독립선언한 지 십삼년 서력 천구백삼십일년 일월에 상해를 포격하야 중국 십구로군의 장렬한 항전으로도 마츰내 부지하지 못하니 그 위긍호협정을 중국 사억만의 참을 수 없는 치욕이었다. 그해 사월 이십구일은 적의 경일이라 전승한 자랑과 아울러 상해가 축하곡
왜적이 우리를 짓밟고 또 중국을 노리여 우리 독립선언한 지 십삼년 서력 천구백삼십일년 일월에 상해를 포격하야 중국 십구로군의 장렬한 항전으로도 마츰내 부지하지 못하니 그 위긍호협정을 중국 사억만의 참을 수 없는 치욕이었다. 그해 사월 이십구일은 적의 경일이라 전승한 자랑과 아울러 상해가 축하곡
에 싸히던 지음에 정오 거의 되자 대지가 뒤집히는 큰 폭음이 나며 홍구공원 경축내에 모아있던 적의 육해공구령공사 총령사 걱구러지고 쓰러지고 눈빠지고 다리 부러지고 한 사람도 버서난자가 없었다. 적은 중국 사람을 의심하았으나 얼마 아니하야 대한사람 윤봉길 이름이 온 세계에 러지었다. 우리는 어디서든지 우리의 적을 죽이는 것이의나 중국만을 위하야 원수를 갚아준 바 아니엇마는 중국은 렬사의 의를 더욱 고마워하야 비롯 정서울 령앙에서 적의 이간에 넘어서 중국 상민을 박해한 일로써 두민 죽사이가 자칫 하면 험악할 뻔하게 되던 것까지 구름 걷히듯 하고 우리 독립에 큰 힘을 아끼지 아니하고 저들하았으니 장중정 옹통이 우리 독립을 선창할 때도 윤봉길 렬사의 저때에 런지런독탄스리 가귓에 새로웠을 줄 안다. 렬사가 스물다섯에 이 일을 하고 이듬해 십이월 십구일 적의 광대단에서 적의 총에 의로운 일생을 마추었다. 김백범 선생이 입국하면서 덕산시장 리렬사의 집을 찾어가서 제사하고 그 뒤 내단으로부터
유골을 찾어다가 국장의례로 리봉창 백정긔 두 분과 나란히 효창원 구광 뒤에 봉장하았다. 이제 례산군 교육회에서 중소학생의 정성을 모아서 렬사의 고향에 비를 세우니 우리나라에 우리 정부가 선 이듬해나 렬사가 살아계셨드면 지오 마흔넷이다.
대한민국 삼십일년 사월 이십구일에 세우다. 김수렬 작
충청남도례산군교육회 충청남도 선렬유적표천회
대한민국 삼십일년 사월 이십구일에 세우다. 김수렬 작
충청남도례산군교육회 충청남도 선렬유적표천회
충남 예산군 예산읍 예산리 526-2 예산경찰서 정문 앞 매헌 윤봉길의사 열사비
윤봉길렬사 나고 자라난 고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