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 135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梅軒嶽降遺墟碑(매헌 악강 유허비)
우진회 기공비
윤봉길 의사가 1930년초 조직한 비밀광복결사 月進會(월진회)는 1932년 4월 29일 세계를 진동한 上海(상해)의거 후 일제의 탄압으로 표류하다가 1944년 2월 15일 禹進會(우진회)가 이를 계승하여 1946년 4월 29일 다시 월진회로 환원하였다. 의사의 호적명은 禹儀(우의)이다. 우진회는 우의 사상을 계승.선양하는 조직이다. 우진회는 회장 윤일의(의사의 4촌제), 이석구(의사의 매제), 윤재의(의사의 6촌제), 김종열(의사 내종제) 맹완제, 윤규상(의사의 제자) 6인의 혈맹(血盟)으로 조직한 일제(日帝)하의 독립운동 단체이다. 짧은 기간 우진회의 업적은 건국후 월진회 활동의 기초를 이룩하였다. 이를 영원히 기념하기 위하여 이 비를 세운다.
2011.4.29 제38회 윤봉길 문화축제 기념
윤봉길 의사가 1930년초 조직한 비밀광복결사 月進會(월진회)는 1932년 4월 29일 세계를 진동한 上海(상해)의거 후 일제의 탄압으로 표류하다가 1944년 2월 15일 禹進會(우진회)가 이를 계승하여 1946년 4월 29일 다시 월진회로 환원하였다. 의사의 호적명은 禹儀(우의)이다. 우진회는 우의 사상을 계승.선양하는 조직이다. 우진회는 회장 윤일의(의사의 4촌제), 이석구(의사의 매제), 윤재의(의사의 6촌제), 김종열(의사 내종제) 맹완제, 윤규상(의사의 제자) 6인의 혈맹(血盟)으로 조직한 일제(日帝)하의 독립운동 단체이다. 짧은 기간 우진회의 업적은 건국후 월진회 활동의 기초를 이룩하였다. 이를 영원히 기념하기 위하여 이 비를 세운다.
2011.4.29 제38회 윤봉길 문화축제 기념
윤봉길 의사가 20살이 되던해 야학과 농촌부흥을 위해 설립한 부흥원
윤봉길 의사의 생가가 있는 도중도.
'내건너'라고 불리기도 했던 이곳은 '빛이 타나는 곳'이란 뜻으로 후에 '광현당'이라고 명명되었다
윤의사는 이곳에서 윤 황공의 장남으로 태어나 4세까지 성장했다. 이곳은 사방으로 냇물이 흐르고 있으므로
도중도(島中島)(한반도가운데 섬이란 뜻)란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내건너'라고 불리기도 했던 이곳은 '빛이 타나는 곳'이란 뜻으로 후에 '광현당'이라고 명명되었다
윤의사는 이곳에서 윤 황공의 장남으로 태어나 4세까지 성장했다. 이곳은 사방으로 냇물이 흐르고 있으므로
도중도(島中島)(한반도가운데 섬이란 뜻)란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