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종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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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충청남도 예산군 광시면 신흥리 70
탐방로그
김한종 생가는 독립운동가 김재정의 아들인 김한종이 태어난 곳이며 독립운동을 도모하던 장소이다. 김한종 생가 근처에는 김한종선생 기념관과 김한종 묘도 위치해있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김한종 의사 생가지
이 곳은 일제시대 독립운동을 하였던 김재정, 김재풍 형제와 김재완 의사의 아들인 김한종 의사가 태어난 곳이며 독립운동을 도모하던 장소이다. 김한종(1883~1921)의사는 독립운동가로 의병장 민종식의 휘하에서 소모관으로 활약한 김재정의 아들이다. 어려서 한학을 공부하고 1915년 박상진 등과 함께 대구에서 무장독립 비밀결사인 대한광복회를 조직하였다. 광복회는 1916년 노백린, 김좌진 등을 규합하여 대한광복단으로 개칭하였는데 김한종 의사가 전라.충청지부장으로 임명되어 각지의 부호들로부터 국권회복운동을 위한 자금을 거두었다. 1918년에는 김경태, 임봉주를 보내어 친일인사인 도고면장 박용하를 사살하였다. 그해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을 받다가 1921년 8월에 대구형무소에서 박상진과 함께 처형 당하였다. 1963년 건국훈장 단장이 추서되었다.
사당인 광복사의 모현문
충남 예산군 광시면 신흥리 70에 있다는 일우 김한종 선생 유적지를 찾아간다.
그런데 안내판은 6Km라고 나오고, 네비게이터는 4Km라고 이야기를 한다.
네비게이터에서는 1Km 남았다고 하는데, 차가 더 이상 올라갈 수가 없다. 체인을 채워도 불가능하다.
고민하다가 차를 한 쪽에 세워두고 걸어서 가기로...
걸어서 고개를 넘어서 1Km이상 걸어가니 유적지가 보였다.
다음은 일우 김한종 기념관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설립취지문이다.

유구한 배달민족이 왜국의 침략으로 나라를 침탈당하자 김한종 의사가 분연히 한 목숨 바쳐 나라를 찾고 겨레를 구하고자 독립운동을 하시다가 체포되어 39세의 일기로 사형을 당하고 순국하신지도 85년이 되었습니다.
한편 김한종 의사는 가셨으나 그 독립정신은 면면히 이어져 광복을 맞게 되었고 그로부터 61년이 되었으나 한반 도는 아직도 주변대국의 이해관계가 각축하고 있고 무엇보다도 일본은 독도 영토문제, 역사문제 등 침략사를 미화하고 있으며 중국은 고구려를 중국역사에 편입하려는 소위 동북공정의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시련의 시대입니다.
그럼에도 우리사회는 급격한 세기의 변화속에서 중심을 잃고 국가의 소중함을 망각한 채 이기주의와 물질만능주의 등 가치관의 혼돈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시 한번 세계정세를 돌아보고 경각심을 일깨워야 할 이 때에 예산모현사업회에서는 김한종의사께서 서당을 세워 후학을 지도하고 독립운동을 하시던 생가터 옆에 국가보훈처, 충청남도, 예산군의 지원으로 사당 및 기념관을 건립하여 선생의 유품과 자료를 전시하게 되었습니다.
아무쪼록 이러한 뜻깊은 복원작업이 후손들에게 국가와 민족이 무엇인가를 일깨우고 우리국가가 무궁토록 번영해 나갈 정신적 자존과 긍지의 산교육의 장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