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철 기념비

4

주소
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 482-2
탐방로그
애국지사 서병철 기념비는 서산시 읍내동 482-2 서산시청 앞에 건립되어 있다. 이 곳에는 독립운동 및 호국, 경찰 추모비 등 독립과 호국을 위해 몸 바친 이들을 추모하기 위한 여러 비석들이 서 있다. 1979년 선생의 공적을 기리고 선생의 정신을 보존하기 위하여 1979년 3월 1일 삼일절에 비석을 건립하였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조국의 독립과 민족을 위해 일생을 바친 후산 서병철지사는 조선 선조와 인조조의 현상 달성 서성 시호 충숙공 아호 약봉의 11대손으로 1893년 7월 6일 본군 해미면 억대리에서 출생 일찌기 한학을 배우고 사립 해명학교에서 수학 약관21세 되던 경술년 온 민족이 조국을 잃은 통한의 국치를 당하게되자 공은 자신의 학문을 버리고 오직 구국의 일념으로 많은 애국지사들과 함께 독립투쟁을 시작했다. 국내외
에서 대소의 독립운동이 끊임없이 계속되는 동안 공은 대한독립단원으로 활약하여 서산군내의 독립단 조직과 독립운동 자금조달을 위해 1918년 서산지단을 조직했고 1919년에는 3.1독립운동에 참가했다. 상해에 임정이 수립되자 공은 임정을 도와 독립투쟁을 하던중 1920년 일경에 피검되어 공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고 출옥후 애국투사 김상옥 명제세 조만식 김동순 지사들과 조국광복을 위한 일대의거를 추진중 재차 피검되여 경성형무소에서 또 다시 옥고를 치렀다. 출옥후에도 투쟁은 계속되었고 요시찰인물로 사건이 발생할때마다 모진박해와 검속의 고난을 무수히 겪으면서도 혼신의 투쟁을 계속하다가 1945년 드디어 광복을 맞이하였다. 광복후에도 공은 조국의 통일과 민족의 번영을 위하여 조국애 와 민족자립정신 함양에 힘썼고 근검절약의 정신을 몸소실천하였고 애국지사의 모임인 독립동지회에 참여하여 독립정신 앙양에 힘썼왔다. 또한 공의 생존시에 그의 독립운동 공적에 대한 치하와 경위를 물으면 '독립운동은 이해를 따라하는것이 아니며 더구나 치하를 받기위하여 하는것도 아니다'라며 자신을 감추고 공로는 타에 돌리는 극히 겸양한 분이었다. 이러한 사연도 당시 법원의 판결문과 생존한 동지들의 구전에 의한것임을 밝혀두는 바이다. 이에 정부는 애국공적을 기려 1977년12월 건국포장을 추서하였고 유족에게는 원호금을 수여한바 있다. 유족인 서정익박사는 이 원호금을
기금으로 하여 후산장학회를 만들어 일부 고달픈 학도들에게 작학금을 주어 영재를 기르는데 이바지하고있다. 애국지사 후산공은 전생애를 조국에 바치었고 그의 고고한 정신과 빛나는 공적을 길이 추모기념코져 군민의 찬동으로 이 비를 세움에 이른것이다.
지사 후산 서병철기념비
지사 후산 서병철기념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