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국 구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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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충청남도 부여군 장암면 장하리 242-1
탐방로그
부여군 장암면 장하리 242-1에 위치한 애국지사 강병국 선생 구 묘비를 찾았다. 현재 묘는 현충원으로 이장되었고, 묘비만이 남은 상태이다. 애국지사 강병국선생 구 묘비는 장하1리(장정) 애국지사마을 표지석 맞은편에 존재하며, 장정마을 초입에 있다. 애국지사 강병국선생 구 묘비부터 장하1리 마을회관까지는 약 700m로, 도보로 11분 정도 소요된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애국지사 진주강공 병국
지사의 성은 강이요 휘는 병국이며 초휘 용모 호는 청신 진주인이다. 을유년 10월 11일 부여군 장암면 장하리에서 휘 봉구의 장자로 출생하니 고구려 양양왕조의 병마도원수 휘 이식을 비조로하고 고려 원종조에 휘 계용 진산부원군 박사공의 29세손이다. 우전지통계공 휘 준충은 관이 보문각대제학이요 입아남계공 휘 치손 가선대부지 중추원사공의 15세손이다. 청산은 유시부터 남다른 기개와 품성의 강직함은 선대의 사통이며 인의와 예지를 익히고 궁행함은 종숙 송계의 훈도로 추사광시의 수덕은 적확한 종생의 신조가 되었다. 경오년 광주학생운동당시 부여지구 주동인물이었던 애국지사 강일의 조직에 가담하여 연락책으로 위선되자 애국지사
유기섭과의 은밀한 연계를 시발로 청산의 생애는 광복을 위한 구국의 대열에 심혈을 경주하였다. 약관에 경성 갈돕회 강석동의 밀유와 공의 재종형 병환의 권유로 전국에 파급되던 문맹퇴치운동에 참여하여 장정학당의 언문강사로 활약하고 배일사상과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면서 원유회라는 조기회를 가장하여 지하운동을 전개하였으니 기록상의 투쟁경력은 구국비밀만체로 항일 대한독립 신간회와 백마강 조개섬을 거점으로 삼은 금강문인회 부여농민 구락부등에 조직구성원으로 당시의 동아일보기사나 형사기록에서 변함과 같이 청산께서는 평생 배일 일념의 애국지사이다. 계유년 12월 항일운동을 강화함에 따라 기밀이 일경에 누설되어 애국지사 노명우 이호철 강성모등 9명과 연계자 18인이 체포구금이되니 치안유지법위반으로 2년간 혹독한 옥고를 치루고 을해11월 형집행판결이 되어 공주형무소에서 집행유예로 출감은 하였으나 심한 형독으로 실의와 체념을 삼키며 북만 황야로 유리방랑의 허송 10년에 광복의 빛은 보았으나 가재는 온진되고 비참한 현실에 울분의 나날을 보내다가 갑자는 11월 16일 졸하니 형수 69세이며 북비리 강영촌 발학치 선산 하해좌에 안장하셨다. 유족으론 실인 김해김옥순과 영식 현철 존사 규정과 규응이요 ...이다. 청산이 귀천한지 익년 다행이도 정부로부터 공적을 인정받아 병인12월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니 청산지사의 평생을 통한 서뭉여기하신 후덕의 보답으로 생각한다.
순국선열 호석 강석기 선생의 묘.
묘가 현충원으로 이장한 후에 묘비를 이 곳 마을 입구에 모아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