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김삿갓면 옥동리 162-1
- 탐방로그
- 강원 영월군 하동면(김삿갓면) 옥동리 162-1 김상태 의병장 사당 충절사를 찾아왔다. 이 고장에 의병장이 살던 집터가 남아있고 또한 문중에서 건립했던 충의사라는 사당이 있었던 이 터에 삼척김씨 종친 등이 주축이 되어 김상태 의병장 충절사를 건립하였다고 한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충절사
김상태 의병장은 1862년 단양군 영춘면 남천리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 일가친척이 많이 살고 있는 아동면 옥동리로 이사하여 33세인 1895년 을미사변 이후부터 영월 덕포전투, 영춘 석벽전투, 문경 갈평전투, 영주 죽령전투등 수많은 의병활동에 참여하였으며, 1911년 일본군 밀정의 신고로 체포될 때까지 혁혁한 공을 세웠다.
체포된 이후에는 대구형무소에 수감되었으나 일본인이 주는 음식을 거절하고, 옥중 단식을 벌이다 단식 13일 만에 순절하니 향년 50세였다. 이 고장에 의병장이 살던 집터가 남아있고 또한 문중에서 건립했던 충의사라는 사당이 있었던 이 터에 삼척김씨 종친 등이 주축이 되어 김상태 의병장 충절사를 건립하였다.
김상태 의병장은 1862년 단양군 영춘면 남천리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 일가친척이 많이 살고 있는 아동면 옥동리로 이사하여 33세인 1895년 을미사변 이후부터 영월 덕포전투, 영춘 석벽전투, 문경 갈평전투, 영주 죽령전투등 수많은 의병활동에 참여하였으며, 1911년 일본군 밀정의 신고로 체포될 때까지 혁혁한 공을 세웠다.
체포된 이후에는 대구형무소에 수감되었으나 일본인이 주는 음식을 거절하고, 옥중 단식을 벌이다 단식 13일 만에 순절하니 향년 50세였다. 이 고장에 의병장이 살던 집터가 남아있고 또한 문중에서 건립했던 충의사라는 사당이 있었던 이 터에 삼척김씨 종친 등이 주축이 되어 김상태 의병장 충절사를 건립하였다.
김상태 의병장 유적
김상태(1862~1911)는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일본의 만행에 울분을 참지 못해 의병을 일으킨 의병장으로 각지에서 일본군을 무찔렀고 특히 안동의 서벽전투와 풍기,죽령의 3개 전투는 일본군 수백 명을 희생시킨 우리나라 의병사에 길이 남을 빛나는 전투였다.
1911년 경북 순흥 석천포에서 밀정의 신고로 일본군에 붙잡혀 대구 형무소에서 음식을 거절한채 단식 13일만에 순절하니 춘추 50세였다. 이 고장에 의병장이 살던 집터가 남아있고 또한 문중에서 건립했던 충의사라는 사당이 있었던 이 터에 표석을 세워 장군의 높은 뜻일 길이 후세에 전하고자 한다.
김상태(1862~1911)는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일본의 만행에 울분을 참지 못해 의병을 일으킨 의병장으로 각지에서 일본군을 무찔렀고 특히 안동의 서벽전투와 풍기,죽령의 3개 전투는 일본군 수백 명을 희생시킨 우리나라 의병사에 길이 남을 빛나는 전투였다.
1911년 경북 순흥 석천포에서 밀정의 신고로 일본군에 붙잡혀 대구 형무소에서 음식을 거절한채 단식 13일만에 순절하니 춘추 50세였다. 이 고장에 의병장이 살던 집터가 남아있고 또한 문중에서 건립했던 충의사라는 사당이 있었던 이 터에 표석을 세워 장군의 높은 뜻일 길이 후세에 전하고자 한다.
1991년 11월 30일 영월군수
강원 영월군 하동면(김삿갓면) 옥동리 162-1 김상태 의병장 사당 충절사를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