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산정리 산12-1
- 탐방로그
- 애국지사 윤영삼 선생의 묘소는 안성시 양성면 산정리 산12-1에 위치해 있다. 이 장소에는 윤영삼 선생의 3형제 분 묘소가 나란히 있었다. 묘소들을 이곳으로 이장 하면서 예전의 묘비들은 아래쪽에 두었다. 구 묘비 중에는 순국선열 윤영삼 선생의 구 묘비도 있었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안성시 양성면 산정리 산 12-1 애국지사 윤영삼의 묘를 찾았다.
건국훈장 애국장 순국선열 윤영삼 파평윤씨 32세
건국훈장 애국장 순국선열 尹榮三(윤영삼) 파평윤씨 32세
1891.4.21~1919.4.29(음)
1891.4.21~1919.4.29(음)
윤영삼지사의 3형제분 묘소가 나란히 있었다.
묘소들을 이곳으로 이장하면서 예전의 묘비들이 아래쪽에 나란히 서 있었다.
구 묘비중에는 순국선열 윤영삼선생의 구 묘비도 있었다.
건국훈장 애국장 순국선열 윤영삼(尹榮三) 1891.5.28 / 음 4.21. 1919.4.29 / 음 3.29.
윤영삼 순국선열은 1919년 3.1 독립항쟁 때(원곡.양성의거(4.1~2))에 아우 영만(榮萬), 영환(榮歡)과 함께 참여, 선두 활약하고 일본군경에 피체(4.19) 고문 순국(4.29 / 음 3.29. 안성경찰서) 하셨다. 그 의거는 일제가 민족대표 33인 재판에서 언급한 전국 3대 실력 항쟁(황해도 수안군 수안면 평북 의주군 옥상면 경기도 안성군 양성면 및 원곡면) 중에서도 최고로, 서부 안성지역에 '2일간의 해방을 이루었고, 보복으로 방화 학살 3회, 피체 361, 순국 24, 옥고 127, 태형 40인 배상 1만여 엔 등을 강요당했다. 유해는 두 아우가 30리를 운구, 원곡 공동묘지에 모셨다가 1984.3.8. 정부의 '에국지사 묘소 단장 계획'으로 정성골 산에 옮겼고, 2014.11.21. 이곳에 천장하다. 국가는 1977년 독립유공 대통령 표창,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단기 4348(서기 2015년) 4월 00일 사단법인 3.1운동 기념사업회 회장 문학박사 이정은 글
단기 4348(서기 2015년) 4월 00일 사단법인 3.1운동 기념사업회 회장 문학박사 이정은 글
묘역 입구에는 윤영삼순국선열의 공훈록 안내판이 서 있었다.
순국선열 윤영삼 선생의 묘
성명 : 윤영삼(尹榮三) / 생존기간 : 1891.4.21.~1919.4.29. / 출생지역 : 경기 안성
서훈 : 애국장(1991)
1919년 3.1운동 민족대표 재판에 원용된 전국 3대 '폭동'(황해도 수안 평북 의주 경기 안성) 중 으뜸이며, 일제를 축출하고 서부 안성지역을 "2일간 해방"시켜 전국 유일의 승리를 쟁취한 "안성 4.1만세항쟁" 즉, 원곡-양성명민 2천여 연합시위대의 만세시위(4.1) 전 과정에 참여, 선두 활약 후 안성경찰서에서 고문으로 순국.
경기도지사
성명 : 윤영삼(尹榮三) / 생존기간 : 1891.4.21.~1919.4.29. / 출생지역 : 경기 안성
서훈 : 애국장(1991)
1919년 3.1운동 민족대표 재판에 원용된 전국 3대 '폭동'(황해도 수안 평북 의주 경기 안성) 중 으뜸이며, 일제를 축출하고 서부 안성지역을 "2일간 해방"시켜 전국 유일의 승리를 쟁취한 "안성 4.1만세항쟁" 즉, 원곡-양성명민 2천여 연합시위대의 만세시위(4.1) 전 과정에 참여, 선두 활약 후 안성경찰서에서 고문으로 순국.
경기도지사
어디엔가 묘소 안내판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주위를 살피면서 내려갔다.
마을을 빠져 나와 마을 입구에서 애국지사 묘소 안내판을 찾을 수 있었다.
순국선열 윤영삼 선생 묘지 안내판(위치 : 안성시 양성면 산정리 산 12-2) 150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