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부곡리 253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당진상록수교회
심훈선생의 형 심명섭목사가 1950년 한국전쟁 중 인민군에게 납북을 당한 후 향리에 내려온 부인 권유희권사와 심훈가 가족 중심으로 소수의 피난민과 지역주민이 참여하여 1951년 9월 23일 필경사에서 첫 예배를 드림으로 교회의 기초를 세우게 되었다. 그후 21년간 필경사를 교회당으로 사용하여 예배를 드린 후 2차 교회당을 거쳐 2001년 4월 16일 현재의 자리에 3차 교회당으로 신축 봉헌되었다.
심훈선생의 이모 윤병영전도사가 초대와 제8대 담임교역자로 사역하셨고 부곡교회로 설립되었다가 2007년에 심훈선생의 농촌계몽운동을 신앙적 계몽운동으로 이어가려는 뜻을 담아 당진 상록수교회로 개명하였다.
심훈선생의 형 심명섭목사가 1950년 한국전쟁 중 인민군에게 납북을 당한 후 향리에 내려온 부인 권유희권사와 심훈가 가족 중심으로 소수의 피난민과 지역주민이 참여하여 1951년 9월 23일 필경사에서 첫 예배를 드림으로 교회의 기초를 세우게 되었다. 그후 21년간 필경사를 교회당으로 사용하여 예배를 드린 후 2차 교회당을 거쳐 2001년 4월 16일 현재의 자리에 3차 교회당으로 신축 봉헌되었다.
심훈선생의 이모 윤병영전도사가 초대와 제8대 담임교역자로 사역하셨고 부곡교회로 설립되었다가 2007년에 심훈선생의 농촌계몽운동을 신앙적 계몽운동으로 이어가려는 뜻을 담아 당진 상록수교회로 개명하였다.
필경사
필경사 바로 옆에 새롭게 건립된 심훈기념관
심훈기념관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 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 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하량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鐘路)의 인경(人磬)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頭蓋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恨)이 남으오리까.
그 날이 와서 오오 그 날이 와서 육조(六曹)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鼓]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行列)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원이 없겠소이다.
1930년 3월 1일
두개골(頭蓋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恨)이 남으오리까.
그 날이 와서 오오 그 날이 와서 육조(六曹)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鼓]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行列)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원이 없겠소이다.
1930년 3월 1일
심훈동상은 심훈가 후손들의 재정지원으로 세워짐. - 2014 기증 -
7월의 바다
7월의 바다
흰 구름이 벽공에다 만물상을 초 잡는 그 하늘을 우러러보아도, 맥파만경에 굼실거리는 청청한 들판을 내려다보아도 백주의 우울을 참기 어려운 어느 날 오후였다.
....
- 1935년 여름 -
7월의 바다 이 이 산문은 심훈의 옛집인 '필경사'에서 북북동쪽으로 내다보이는 아산만에 있는 섬에 두 번째 다녀와서 쓴 것이다.'가치내'란 이 섬은 행담도로 행정구역상 당진시 신평면 매산리에 속하고 있다.
흰 구름이 벽공에다 만물상을 초 잡는 그 하늘을 우러러보아도, 맥파만경에 굼실거리는 청청한 들판을 내려다보아도 백주의 우울을 참기 어려운 어느 날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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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5년 여름 -
7월의 바다 이 이 산문은 심훈의 옛집인 '필경사'에서 북북동쪽으로 내다보이는 아산만에 있는 섬에 두 번째 다녀와서 쓴 것이다.'가치내'란 이 섬은 행담도로 행정구역상 당진시 신평면 매산리에 속하고 있다.
감옥에서 어머님께 올린 글월
어머니- 오늘 아츰에 고의 적삼 차입해주신것을 받고서야
제가 이곧에 와있는것을 집에서도 아신줄 알엇습니다. 잠시도 어머니의 곁을 떠나지 않던 막내동이의 생사를 한달동안이나 아득히 아실 길 없으셨으니 그동안에 오죽이나 애를 태우셨습니까?
그러하오나 저는 이곳까지 굴러오는 동안에
어머니- 오늘 아츰에 고의 적삼 차입해주신것을 받고서야
제가 이곧에 와있는것을 집에서도 아신줄 알엇습니다. 잠시도 어머니의 곁을 떠나지 않던 막내동이의 생사를 한달동안이나 아득히 아실 길 없으셨으니 그동안에 오죽이나 애를 태우셨습니까?
그러하오나 저는 이곳까지 굴러오는 동안에
이 책상은 심훈선생이 낙향하여 집필할 때 사용했던 것이다. 상록수, 직녀성, 영원의 미소, 등 다수의 작품을 이 책상에서 창작하였다.
가로 120cm 세로 90cm 높이 72cm로 조립이 가능하다.
기증자 : 심재호
가로 120cm 세로 90cm 높이 72cm로 조립이 가능하다.
기증자 : 심재호
당진시 송악읍 부곡리 251-12 심훈(심대섭)선생 고택 필경사를 찾았다.
당진상록수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