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상은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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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 두산리 304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애국지사 취송 남상은 선생 묘비
공의 휘는 상은이요 자는 도삼이고 호는 취송이며 의령남씨이니 조선조개국원훈 영의정 시 충경 휘 재의 19대손이요 임진왜란 노량해전에서 순국하신 의천원군 휘 유의 12대손이요. 인조 조 정묘호란때 순절로 살신보국하신 명신 의춘부원군 충장공 휘 이흥의 11대손이요. 고조 휘 도수이고 무과부장이며 고의 휘 성희이니 대한민국정부의 독립유공자 포상 애국지사이시고 비는 능성구씨요 계비 경주최씨이다. 공은 갑오생이니 도호의숙에서 수학하였으며 품성이 강직하여 치가에 유법하고 더욱 봉선교자에 노력하였고 노경에 이르러 많은 빈객을 접대하니 종족향당의 추앙을 받았다. 경술국치 이후로는 평소망국의 비분를 금치못하던 중 대호지4.4 독립운동의 산실인 도호의숙 동문 유생 남주원 남상락 남상직 이춘응 남상돈 남상집
이대하 민재봉 남계창 지사 및 이인정 면장 남정 휘 운석 선생과 같이 독립의 기회를 탐색하였다. 백형 상학 지사와 교류가 있는 김좌진 장군과 남상락 지사와 교분이 있는 만해 한용운 및 호남지역 의병부총영사 남정 선생을 통하여 평소 국제정세를 접하였던 바 적도에서 일어난 2.8 독립선언과 미국대통령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제창등으로 국제여론이 아국의 독립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탐지하고 핵심지도부 지사들은 광무황제의 인산참례와 정보모집차 상경하였다가 3.1운동에 참가하고 귀향하였다. 공과 같이 주도 지사들은 구국의 공생공사할 것을 결의하고 민관이 혼연일체가 되어 기미년 4월 4일 일천여민중을 규합하여 대호지면 사무소 광장과 천의장터에서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위운동을 전개활약하다가 왜관헌에게 2백여명이 피체되어 전대미문의 흑두형이란 악독한 고문을 받았으며 공은 공주와 서대문감옥 등에서 양년 옥고를 치루었다. 기미년 공주감옥에서 김도일 박경옥 이달준 지사가 568월 악형에 못이겨 차례로 옥중 순국하자 왜경은 유달리 공의 입회를 강요하며 병사하였음을 인증하라는 수모를 당하였다. 공은 출옥 후 모진 고문과 악형의 여독으로 여생을 시달리시다 1973년 8월 24일 영민하시니 오호라 삼가 명복을 비오니 공은 가셔도 그 충절의 숨결은 무궁하리라. 광복 40여년에 대한민국정부는 선생에게 건국훈장을 추서하여 영령을 위로하였다. 배는 성주이씨이니 병신생이요 1971년 5월 25일에 졸하여 묘는 두산리 사곡선영하 걸좌에 걸위합부하다. 공의 문중이야말로 역사에 빛날 충의의 표상이다. 남과 북에서 외침을 죽음으로 막아낸 양세충신의 후손들은 사생취의로 독립운동을 하였던 바 정부는 무려 18명이나 독립유공자로 포상을 내렸다. 부 성희 지사는 공과 함께 대호지4.4 독립운동 주도 지사로 활약하였으며 백형 상학지사는 백야 김좌진 장군과 같이 군자금 모금과 광복의열투쟁에 가담한 후 왜적의 탐색이 삼엄해지자 만
주로 망명하여 북로군정서의 독립군에 입대 청산리대첩에서 전사하였다. 공의 삼부자가 보여준 선각자의 모습은 험난한 파도를 헤쳐나가야 할 후세들에게 하나의 표상이며 그 충절 그 투혼은 만인의 귀감이라. 공들은 겨레의 수호신이 되어 일월과 함께 억만년 밝은 빛을 드리워 주리라.
취송 선생께 올립니다. 선생이시여! 공의 삼부자는 비록 가셨어도 혼은 우리의 곁을 떠나지 않았고 일경의 만행을 가슴에 담은 채 눈을 감았어도 숭고한 뜻은 겨레와 함께 길이 빛날 것이며 님들께서 보여주신 조국에 대한 붉은 마음은 우리의 힘으로 남아있으니 님들이 피로 얻은 조국은 우리 후손들이 지키겠나이다. 이 땅과 조국은 단군 성조께서 세우신 나라 그러나 일제가 강점한 이후 공들은 조국광복을 위하여 일제에 항거하다 끝내 민족의 제단에 장렬히 선혈을 뿌리며 죽엄으로 되찾은 나라이다. 나라가 전부형극의 땅이요 조국애난의 현장이며 한국역사의 산 교육장이며 민족의 정기가 서린 땅이다. 이제는 자손된 우리 모두가 힘을 합하여 겨레 위해 산화하신 애국선열의 얼을 되새기고 살신구국하신 성업을 볻받을 때이다. 그 유훈이 깃발되어 배달민족이 하나되고 대동단결하여 열강의 외압을 물리쳐 통일조국의 앞날을 기약할 수 있으며 그렇게 되면 우리 조국이 만세반석 위에서 영달무궁하리라. 공들은 무서운 고문과 죽엄도 두려움 없이 사생취의로 구국대의를 거두었으니 공들의 영령은 조국과 함께 영원하리라. 영령이시어. 이 나라의 수호신이 되어 못다한 일 이루도록 큰 힘 되어 주소서.
사장 어른 영전에
어른들께서는 일찍이 조국이 위태로울 때 선견으로 경고하셨고 국권이 왜적에게 찬탈되었을 때 분연히 칼을 뽑아 살신성인으로 조국을 위하여 가셨습니다. 어른들은 선각자이셨으며 국가의 수호신이십니다. 모든 창조에는 희생이 반드시 뒤따르듯이 님들이 흘리신 고귀한 피의 대가없이 어찌 오늘날 대한민국이 있었겠습니까? 사생취의가사와 신명을 초개와 같이 버리시고 오직 조국광복을 위해 투쟁하셨습니다. 이제 남은 일은 님들이 그렇게도 바라시던 통일조국입니다. 통일위업은 우리 자손들이 기필코 이루어야 할 지상과제이오니 재천하신 선열들께서는 왜적을 몰아내신 그 영용으로 저희들을 음우하여 주시옵소서. 님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은 불멸의 민족혼으로 영원히 그리고 찬연하게 후대에 길이 계승될 것입니다. 애국선열의 영령이시어! 구천에 고이 잠드소서! 명복을 비옵나이다.
글쓴이 사생 11대 과기처장관, 15대국회의원 이상희
취송 남상은 선생의 막내아드님이신 남상주선생의 묘소이다.
송원공의 휘 상주이며 의령남씨이니 선조조 임진왜란때 남해노량에서 수국절충한 의천부원군 휘 유의 12대손이요...
고 위 성희로 애국지사이며 비 능성구씨요 계비 경주최씨이다. 공이 1913년 임자2월 16일 생하니 품성이 순후호탕하여 관이화평하고 의협심이 장하여 처세에 무방하였다. 1988년 1월 27일 졸하니 묘는 두산리 사곡선영하 걸좌에 장하다. 배는 남원 윤종례이니 1912년 1월 21일생이요 심성이 온후정중하다. 자자 방우는 1954년 1월 20일 미혼으로 강원도 양구에서 전사하여 국가유공자로 추서되고 차자 칠우요 녀 영원은 한양 조국형에게 가하고 손이 기돈 기욱이며 손녀 지숙 삼숙이고 여는 약불록하노라.
당진시 대호지면 두산리 304 성암 남성희 선생과 취송 남상은 선생 부자의 묘를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