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 두산리 304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당진시 대호지면 두산리 304 성암 남성희 선생과 취송 남상은 선생 부자의 묘를 찾아왔다.
애국지사 성암 남성희 선생 묘비
공의 휘는 성희요 자는 원일이며 호는 성암이요 의령인으로 공의 18대조 휘 재니 조선 조 개국 일등공신이고 영의정이요 시 충경하고 문종 조 좌의정 시 충간이며 휘 지의 16대손이고 인조 조 정묘호란에 명신 충장공 휘 이흥의 10대손이다. 증 통정대부 승정원 좌승지 겸 경연참찬관 행 통훈사도사주부 휘 속의 8대손이요 통정대부사헌부감찰 휘 흘의 7대손이고 절충장군 중추부 첨지 휘 익문의 6대손이며 증조 휘 도수이니 무과부장이요 조 휘 석건이고 고 휘 정근이요 비는 달성서씨이다. 공이 무진 6월 3일생 하니 천성이 관후하여 종족 향당에 상이인자하고 봉선에 이성하며 사친에 이효하고 도호의숙에 다년 수학하였고 유생들과 더불어 민족자존사상과 구국상론하였다. 드디어 1919 기미년 대호지4.4 독립운동에 맹활약하다가 일병에게 체포되어 서산경찰서에서 3개월형인 태형 90도의 형을 받았으며 특히 백야를 수반한 장자 상학공과의 연계성 여부관계로 가진 회유와 가혹한 형을 받아 전신에 유혈이 낭자하고 기지사경이 됨에 공의 생명이 위독함을 느낀 왜경의 전인출옥 통보를 접한 동지들의 도움으로 동년 4월 24일에 귀가하였다. 슬프도다. 신사 6월 23일에 졸하니 묘는 사산리 사곡 건좌에 장하다. 광복 50주년에 대한민국은 공에게 독립유공자로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여 영령을 위로하였다. 성암 옹의 장자 상학 공은 인접군 출신인 백야 김좌진장군과 같이 군자금 모금과 광복단 의혈투쟁에 협력한 후 왜경의 탐색을 피하여 만주로 망명한 후 북로군정서의 독립군에 입대하여 청산리대첩에서 전사하였고 차자 상은 선생은 대호지4.4 독립운동에서 주도 지사로 분투하다 피체되어 양년 옥고를 치루었으니 한 집에 3부자가 독립운동을 하였는바 불고 처자 불고 가사로 사생취의하셨으니 천국에 계신 님은 수명천추하오리라. 초 배 능성구씨는 무진생이요 을축 11월
11일 졸하니 무육하고 향년 21이요 묘는 초폄전동하고 후에 걸위합부하다 계배 경주최씨이니 임신생이요 신사 6월 25일 졸하니 사곡에 3위 합봉하고 생 3남 4녀하니 장 상학이요 차 상은이요 계 상주이며 전주 이동의 광산 김예현 남원 윤동섭 전주 이기팔이고 손에 경우는 장남 출이요 필우 민우 만우 대우는 차남 출이요 방우 칠우는 계남 출이요 장 증손 기봉이며 여는 불진록하노라.
애국지사 취송 남상은 선생, 충남 (瑞山) 사람이다. 1919년 3월 1일 광무황제 인산을 참관하기 위하여 서울에 갔다가 파고다공원에서의 독립만세시위에 가담한 그는 그후 귀향하여 동지 이대하(李大夏)·남상락(南相洛)·남상돈(南相敦)·남윤희(南潤熙) 등과 같이 독립만세시위를 의논하고 거사를 준비하였다. 그리고 동년 4월 4일 충남 서산군(瑞山郡) 대호지면(大湖芝面)의 도리리(桃李里)와 천의리(天宜里) 장터에서 수백명을 규합하여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경찰주재소를 습격하여 파괴하다가 132명의 동지와 함께 피체되었다. 그리하여 동년 10월 24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형을 받고 공소하였으나 12월 2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8월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
취송 남상은 선생의 막내아드님이신 남상주선생의 묘소이다.
송원공의 휘 상주이며 의령남씨이니 선조조 임진왜란때 남해노량에서 수국절충한 의천부원군 휘 유의 12대손이요...
고 위 성희로 애국지사이며 비 능성구씨요 계비 경주최씨이다. 공이 1913년 임자2월 16일 생하니 품성이 순후호탕하여 관이화평하고 의협심이 장하여 처세에 무방하였다. 1988년 1월 27일 졸하니 묘는 두산리 사곡선영하 걸좌에 장하다. 배는 남원 윤종례이니 1912년 1월 21일생이요 심성이 온후정중하다. 자자 방우는 1954년 1월 20일 미혼으로 강원도 양구에서 전사하여 국가유공자로 추서되고 차자 칠우요 녀 영원은 한양 조국형에게 가하고 손이 기돈 기욱이며 손녀 지숙 삼숙이고 여는 약불록하노라.
고 위 성희로 애국지사이며 비 능성구씨요 계비 경주최씨이다. 공이 1913년 임자2월 16일 생하니 품성이 순후호탕하여 관이화평하고 의협심이 장하여 처세에 무방하였다. 1988년 1월 27일 졸하니 묘는 두산리 사곡선영하 걸좌에 장하다. 배는 남원 윤종례이니 1912년 1월 21일생이요 심성이 온후정중하다. 자자 방우는 1954년 1월 20일 미혼으로 강원도 양구에서 전사하여 국가유공자로 추서되고 차자 칠우요 녀 영원은 한양 조국형에게 가하고 손이 기돈 기욱이며 손녀 지숙 삼숙이고 여는 약불록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