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필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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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금곡리 256
탐방로그
서재필의 자서전에 따르면 이 곳은 서재필의 부모형제와 친척들이 여러 대에 걸쳐 살아온 곳으로 알려졌다. 2018년 기준 서재필 박사 본거지 정비 사업을 하면서 원형을 보존하고자 주초석 정비를 하였다. 인근에 금곡서원이 있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논산시 연무읍 금곡리 256 서재필 박사 본가지를 찾아보았다.
건물은 보이지 않았다.
주춧돌만 놓여 있다.
서재필 박사 본가지
서재필 박사 본가지
이 곳은 서재필 박사의 부모형제와 친척들이 여러 대에 걸쳐 살아온 곳이다. 서재필 박사는 자서전에서는 이곳을 어렸을 적에 6~7년 가향 살던 곳이며, 우리 할아버지 떄부터 살던 고향이락 소개했다. 서재필박사 본가지는 동네의 가장 안쪽에 자리잡고 있으며, 앞쪽으로는 마을의 민가들이, 뒤쪽으로는 대나무 숲 등이 있다. 본가지의 안쪽에는 정면3칸, 측면 2칸으로 된 안채가, 오른쪽에는 정면 측면 각각 2칸의 창고가 있다. 하지만 실제 거주하는 사람의 편의에 따라 변형이 이루어진 부분이 있으면 2018년 서재필박사 정비사업을 하면서 원형을 보존하고자 주초석 정비를 한 바 있다.
서재필 박사(1864~1951) 개화기 정치가. 독립운동가
서재필 박사는 1864년 1월 7일 외가인 보성에서 아버지 서광언과 어머니 성주이씨 사이에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호는 송재이고, 본관은 달성이며, 미국으로 귀하하여 지은 이름은 필립 제이스(Phillip Jaisohn)이다. 그는 어려서 5촌 당숙인 서광하에게 입양되었고, 7사 떄 서울로 올라가 양외숙인 김성근의 집에서 공부하였다. 1882년 별사문과에 급제하여 교서관, 부정자에 임명되었다. 이 시절 서재필 박사는 김옥균, 서광법, 홍영식, 박영효등과 교류하며 개화사상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최초의 근대적 정치 변혁인 갑신정변을 주도하였다. 이후 '독립신문'의 창간과 독립협회의 창립에 참여하였고 임시정부의 구미위원장을 지내는 등 근대화와 자주독립을 위해 헌신하였으며, 195년 1월 5일 87세를 일기로 미국에서 생을 마쳤다. 1977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으며, 1994년 미국에서 유해가 봉환되어 국립현충원에 모셔졌다.
안채(The main building) - 추정 복원도
창고채(Changgochae) - 추정 복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