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엽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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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충청남도 금산군 추부면 장대리 산68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위성지도를 보면서 올라가자 묘소가 2기가 있었다. 앞쪽은 다른 성씨의 묘소이었다.
뒷쪽에 있는 묘소는 산대지의 침입을 막기위해 사망을 보호막으로 막아놓았다.
獨立有功者 李東葉 先生 之墓(독립유공자 이동엽 지묘)
獨立有功者 李東葉 先生 之墓(독립유공자 이동엽 지묘)
일제 침략으로 빼앗긴 국권을 되찾고자 몸소 구국대열에 선봉이 되신 애국지사 이동엽 선생은 전주 이씨로서 문종 14대 이공 세만의 장남으로서 서기 1895년 7월 10일 공주군 정안면 석송리 208번지에서 출생하셨다. 선생은 남달리 애국애족의 정신이 투철하여 망국의 비운을 통감하시드니 기미년 3월 서울에서 독립선언과 시위가 시작되어 온 국민들의 자발적 시위는 요원히 거대한 불길처럼 전국에 퍼져나가자 선생께서는 이에 호응하여 향리에서 시위할 겄을 결심하시고 위선 애국동지 이호한 정재덕 등과 회합하여 선생이 정안면 총책을 맡으시고 기후 모일 같이 수백 군중을
이끌고 공주읍까지 만세시위를 감행하니 태극기는 대지를 뒤덮었고 군중의 의기는 하늘을 찌르는 듯 하였으며 우렁찬 함성은 산천을 진동시켰다. 때는 4월 1일 석송리 무지 개울뚝에서 선생이 주도로 800여명이 궐기하여 만세를 고창하니 그 소리 하늘에 닿고 땅에 울렸으니 어찌 장하다 아니 하리오. 다시 선생의 선도로 군중은 광정리로 노도와 같이 행진하여 일경주재소를 파괴하고 일인가옥을 소각 후 석송리로 되돌아왔을 때 일본헌병들과 만나 격투를 벌였으나 총검 앞에는 당할 수 없어 다수의 사상자를 내고 선생은 주모자로 체포되어 갖은 고문을 당하시고 공주형무소에 수감되였다. 2년 후 출옥되였으나 옥고의 여독으로 내내 병고에 시달리리면서도 항상 자라나는 후세에 민족정신을 고취하시는 등 일생을 통하여 항일운동을 하시다. 그렇게도 갈망하시던 조국 광복도 보시지 못한 채 1945년 3월 26일 51세를 일기로 값진 공적을 남기시고 서거하시니 정부에서는 그 크신 업적을 기리어 1983년 8월 30일 선생에게 건국훈장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
선생은 실로 조국광복복의 등불이시며 또 길잡이였음으로 거룩한 공적을 기리며 후세에 귀감이 되도록 이 공적비를 세워드린다. 금산군수 박종순 세움
서기 1988년 10월 일
금산군 추부면 장대리 산68 숭암저수지 옆 도로 커브에서 140m 독립유공자 이동엽의 묘를 찾았다.
이동엽지사의 묘소는 오래전부터 대전지방보훈청 봉사모임인『보훈사랑회』에서 후손이 고령 및 원거리 거주 등으로 관리가 어려운 독립유공자 묘소를 찾아 벌초하고 정화하는 봉사활동을 펼쳤다는 기사를 보았지만, 위치를 확인할수가 없었다.
올초에 이 묘소를 벌초하시는 분의 Blog를 발견하여 묘소위치를 설명받았다.
매우 더운 날씨에 풀들이 많아서 올라가기가 쉽지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