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만수 공훈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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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 오산리 산39-3
탐방로그
애국지사 유만수 선생 공훈기념비는 경기 안성시 금광면 오산리 산 39-3에 위치하고 있다. 진주유씨 문정공묘역 입구에 있으며, 평택충주고속도로 바로 아래에 있었다. 터널을 지나면 산 39 문정공묘역이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유 문정공 신도비명
경기 안성시 금광면 오산리 산39 진주유씨 문정공묘역 입구 애국지사 유만수 선생 공훈기념비를 찾아왔다.
평택충주고속도로 바로 아래에 있었다. 터널을 지나면 산 39 문정공묘역이다.
GPS에 의하면 이곳의 주소는 경기 안성시 금광면 오산리 산 39-3이다.
대한민국 독립유공 애죽지사 유만수공 공훈 기념비
진주유씨 휘 만수님은 1923.(계해년) 10.24. 부친 휘 원목(자 만호) 모친 함양박씨의 3남으로 출생하셨고, 부인 경주 김계갑과의 사이에서 해민, 세종, 해윤, 진숙, 경숙과 손자 지형, 시형을 출산하였는바
공은 율곡 선생의 옥당론에서 한국 선비 정신의 극치로 칭송되는 3대 사한림(괴정공 유문통, 수재공 유인귀, 문정공 유인숙, 몽암공 유희령)의 후손으로서 진주양씨 문정공 유인숙 선생 호 정수 중종, 인종조, 도승지 대사헌, 대사간, 형조, 호조, 공조, 이조판서, 숭정대부, 우찬성(기묘, 을사명현, 청백리, 만둔서월, 최석정, 송병선 찬 신도비)의 13대손입니다.
진주유씨 휘 만수님은
1943년 5월 일본 천기(가와사키)에 있는 일본철강주식회사에 취업중인 한국인 노무자들이 궐기하여 민족차별에 반대하는 농성시위에서 주도적 역활을 하였고, 그 후 그 사회에 장제 수용되어 생활하다가 그 사회를 탈출하여 일본내의 노무자 단체를 전전하면서 일본으로 강제수용되어 온 한국동포의 구출활동을 한 후 귀국하였고, 1945년 5월 동지 강윤국, 조문기와 함께 일본총독부 고관과 친일파를 처단하고 대한민국의 독립과 광복을 위하여 애국충렬동지들을 규합하여 한국애국청년단을 비밀리에 조직하고 의장으로 피선되어 기회가 오기를 기다려서 1945년 7월 20일 친일의 거두인 일본 중의원 박춘금이 소위 대의당이란 정당을 조직하고 내선일체와 조선인의 황민화를 부르짖으면서
서울 부민관에서 아세아 민족 분격대회를 개최하던 중 유공은 동지 3인과 다이나마이트로 폭탄 2개를 만들어 그 대회장에 들어가 연단과 복도에 장치하여 폭발시킴으로서 일본조선군 사령관을 비롯하여 일본 고관들이 참석한 대회장을 수라장으로 만들어 (세칭 부민관 폭탄사건) 대한민국의 독립과 광복을 국내외에 천명함으로써 1977년 국가로부터 독립유공자 건국포상을 추서받았고, 1990년 애국지사로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으며, 이는 3대 4한림 문정속 유인숙 선조님의 선비정신과 대동평화사상을 몸소 실천한 것으로서 공의 애국정신과 독립유공의 유덕을 영원히 기리기 위하여 대한민국 광복회와 율곡문화원, 유한림문화원, 진주유씨 문정공파 종친회원들이 성의를 모아 이에 기념비를 건립합니다.
대한민국 광복회
진주유씨 문정공파 종친회 회장 유현수
율곡문화원, 유한림문화원
창설자, 법학박사 변호사 유택형 근식
자 해민, 자부 김선희, 손 지형 손 시형
자 세종, 자부 여수정
녀 해윤, 서 월리암
녀 진숙, 서 임진순
녀 경숙, 서 정정오
유명 조선국 숭정대부 의정부 좌찬성 겸 이조판서 판의금부사지 경연춘추관 사 홍문관 제학 증 익 문정공 정수 유인숙 신도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