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금치 전적지, 동학혁명군 위령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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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충청남도 공주시 금학동 329-6
탐방로그
동학농민군의 넋을 달래기 위해 1973년에 동학혁명군 위령탑이 세워졌으며, 동학농민혁명 100년이 지난 1994년 우금치는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인터넷 자료에 의하면 '평화통일 대장군' 과 '우금티 평화 여장군' 두개의 장승이 있는데.... 파손된 비문도 그렇고..
우금치 터널을 지나는데, 우금치 전적지라는 안내판을 보고서 차를 세웠다.
동학혁명군 위령탑
우금치 전적지
이 곳은 제2차 동학농민운동 때의 당시의 최대 격전지로 동학농민군의 원혼이 서려 있는 곳이다. 1894년 2월 전라도 고부에서 전봉준 등이 탐관오리의 학정과 부패한 정치를 바로잡기 위하여 보국안민과 제폭구민의 기치를 내걸고 봉기하였다. 농민군은 정부와 전주화약을 맺은 후 집강소를 설치하고 개혁을 추진하였다. 정부가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일제의 내정 간섭이 심해지자 2차 봉기를 하였다. 농민군은 동학의 남.북접 연합으로 충청도 감영인 공주를 공격하기 위하여 공주 주변인 효포, 널티, 우금치 등에서 관군, 일본군과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하였다. 이곳 우금치에서 동학군은 신식무기로 무장한 진입군에 의하여 패퇴하고, 전봉준 등의 지도자들은 체포되거나 죽임을 당하였다. 현지 이곳에는 전적비 주변에 동학농민군의 반제, 반봉건 운동 100주년 맞아 기념사업회에서 1995년에 제작한 조형물이 전시되고 있다.
동학혁명군 위령탑
'동학혁명군위령탑‘이라는 휘호를 박정희 전 대통령이 썼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박정희 대통령은 명예건립위원장이 되고 금일봉도 하사했다고 한다.
인내천(人乃天)과 사민평등(四民平等)의 종지 아래 후천개벽(後天開闢)의 혁명정신으로 무장하고, 동학접주 전봉준이 호남의 만석보 기슭에서 수천의 농민군을 편성하여 첫 봉화를 든 것은 갑오(1984년) 정월10일, 20일께는 다시 대거하여 백산(白山)을 점거하고 습격해 오는 관군들을 격파하면서 승승장구, 4월말에는 전주성까지 함락하게 되니, 혁명의 성공이 눈앞에 다가오는 듯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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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청일양국의 무력간섭 아래, 이 나라의 주권마저 위협받게 되자, 정부 측이 먼저 화해하기를 청하니, 우국애민의 일념에서 동학군은 마침내 양보하여 전주성을 내어주고,
그 여력을 오직 지방조직에만 기울였다.
그런데 불구하고, 군국주의 일제의 엄청난 야욕은 돌연 남의 나라 주권을 침해하면서,
경쟁상대인 청국군을 패주시키고 한반도 전역을 독점하고자 날뛰게 되니, 정녕 국가의 명맥이 통틀어 풍전등화가 되고 말았다.
이에 한동안 후퇴했던 동학군은 드디어 항일구국의 독립군으로 재무장하고 총궐기하였다.
남북접(南北接)이 호응 합세하여 20만의 대 병력을 논산평야에 집결시키고,
전봉준과 손병희 두 통령의 작전지휘 아래 서울까지 진격하는 주요 거점으로 공주성부터 공략하게 되었다.
그 결과 10월 하순부터 전개된 공주성의 대 공방전은 이 우금치(牛金峙)를 중심으로 날이 갈수록 처참하고 가열하게 되었다.
한 고지의 주인을 4~50 차례나 바꾸어 가면서 세계전사에 유례없는 격전을 되풀이 하였다.
그러하다가 새로 투입된 일본군의 증원부대가 근대의 무서운 살인무기 기관총으로 연속 맹사격을 퍼붓게 되니
악전고투하기 3일 만에 동학군은 막대한 희생자를 내인 채 전우들의 시산혈하(屍山血河)를 넘고 넘어 11월11일 논산방면으로 철수하였다.
대망의 혁명과업이 여기서 좌절당하고 계속되는 추격과 살육 속에 그들의 위국단침(爲國丹忱)조차 알아줄 이 없었다.
그러나 님들이 가신지 80년, 광복 4.19혁명 이래의
신생조국이 새삼 동학혁명군의 순국정신을 오늘에 되살리면서 빛나는 ????의 한 돌을 보내게 된 만큼 우리 모두가 피어린 이 언덕에 잠든 그님들의 넋을 달래기 위하여 이 탑을 세우노니,
오가는 천만대의 후손들이여! 그 위대한 혁명정신을 영원무궁토록 이어받아 힘차게 선양하라.
1973년 11월11일 글 이선근 문학박사 동학혁명군위령탑 건립위원회
감사문. 이 나라 이 민족을 도찬에서 건져내는 동시에 이미 혼탁해진 조정을 과감하게 바로잡고 보국안민의 대업을 이룩하기위하여 이내 목숨을 아낌없이 바친 동학혁명군의 10여만 영령들을 달래고자 이 고장 공주의 갸륵한 이창덕동덕이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온 정성을 바치게 되니천도교 중앙총부는 그 뜻을 더욱 널리펴서 성취시키기로 결정하고 금년 6월25일 이선근박사를 위원장으로 동학혁명군 위령탑건립위원회를 조직한 다음 이 사실을 삼가 박정희 대통령각하께 품신하였던바 대통령각하께서는 위원회가 앙청한 명예회장과 제자의 휘로를 기꺼이 수락하시고,
특히 금일봉까지 하사하시어 일의 거국적인 의의를 더욱 빛내주시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