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충청남도 계룡시 두마면 두계리 57-4
- 탐방로그
- 집은 멸실되고 터만 남았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계룡시 두마면 두계리 57-4 애국지사 서장환 선생 주거지 안내판을 찾았다..
차가 안내판앞에 주차하고 있어서 촬영이 쉽지 않다.
독립운동가 서장환(徐章煥) 선생 주거지(住居址) - 위치 : 충남 계룡시 두마면 두계리 57번지
서장환(1890.10.3~1970.5.28) 선생은 대구 달성출신으로 1910년 8월 경술국치를 당하여 국권이 침탈되자 항일 비밀결사조직 상의회를 조직하여 독립운동과 의병가족을 도왔고, 만주와 상해지역으로 군자금을 송달하였으며, 기미년 3.1운동 때에는 독립선언서를 인쇄하여 배포하다 일본경찰에게 체포되어 가혹한 고문끝에 병으로 풀려났다. 1920년 상해 임시정부를 도와 군자금 모금에 힘썼고, 1921년 자유신보를 간행하여 일제식민지의 부당성을 전세계에 알리기에 힘썼다. 그 후 일본경찰의 끊임없는 감시와 구속을 피하여 1933년 계룡산 신도안으로 일가족이 이주한 후 항일 비밀결사 십이일민회를 조직하고, 후학 양성을 위해 동흥의숙을 설립하여 교육에 진력하셨다. 1943년 이 곳 팥거리로 이주하셨으며 끝까지 창씨개명을 거부하신 대학자이자 항일 독립운동가이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16년 12월 20일 계룡시장
서장환(1890.10.3~1970.5.28) 선생은 대구 달성출신으로 1910년 8월 경술국치를 당하여 국권이 침탈되자 항일 비밀결사조직 상의회를 조직하여 독립운동과 의병가족을 도왔고, 만주와 상해지역으로 군자금을 송달하였으며, 기미년 3.1운동 때에는 독립선언서를 인쇄하여 배포하다 일본경찰에게 체포되어 가혹한 고문끝에 병으로 풀려났다. 1920년 상해 임시정부를 도와 군자금 모금에 힘썼고, 1921년 자유신보를 간행하여 일제식민지의 부당성을 전세계에 알리기에 힘썼다. 그 후 일본경찰의 끊임없는 감시와 구속을 피하여 1933년 계룡산 신도안으로 일가족이 이주한 후 항일 비밀결사 십이일민회를 조직하고, 후학 양성을 위해 동흥의숙을 설립하여 교육에 진력하셨다. 1943년 이 곳 팥거리로 이주하셨으며 끝까지 창씨개명을 거부하신 대학자이자 항일 독립운동가이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16년 12월 20일 계룡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