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충청남도 계룡시 두마면 두계리 45
- 탐방로그
- 집은 멸실되고 터만 남았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계룡시 두마면 두계리 45 애국지사 김지수 생가지 안내판을 찾았다..
독립운동가 김지수(金志洙) 선생 생가지(生家址) - 위치 : 충남 계룡시 두마면 두계리 57번지
김지수(1845.12.14~1911.4.17) 선생은 이곳 계룡시 두마면 두계리 45번지에서 출생하셨으며, 사계 김장생 선생의 11대손이다. 호서지역 유학자들과 교유하기 시작하면서 논산지역에서 학계를 조직해 유림들을 결속하고 가문의 위상을 정립하는 활동을 벌여나갔다. 이러한 활동을 기반으로 1900년 중추원 의관에 임명되었으나 곧바로 사퇴하고 은둔 자정의 길을 선택했다. 1910년 8월 경술국치 후 일제가 내놓은 회유책인 노인은사금(老人恩賜金) 수령을 거절하였으며, 헌병대의 회유와 압박에도 불구하고 일제침략에 저항하다가 망국의 한을 품은채 1911년 칼로 자결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충절을 기리어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16년 12월 20일 계룡시장
김지수(1845.12.14~1911.4.17) 선생은 이곳 계룡시 두마면 두계리 45번지에서 출생하셨으며, 사계 김장생 선생의 11대손이다. 호서지역 유학자들과 교유하기 시작하면서 논산지역에서 학계를 조직해 유림들을 결속하고 가문의 위상을 정립하는 활동을 벌여나갔다. 이러한 활동을 기반으로 1900년 중추원 의관에 임명되었으나 곧바로 사퇴하고 은둔 자정의 길을 선택했다. 1910년 8월 경술국치 후 일제가 내놓은 회유책인 노인은사금(老人恩賜金) 수령을 거절하였으며, 헌병대의 회유와 압박에도 불구하고 일제침략에 저항하다가 망국의 한을 품은채 1911년 칼로 자결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충절을 기리어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16년 12월 20일 계룡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