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충청남도 계룡시 두마면 두계리 15
- 탐방로그
- 집은 멸실되고 터만 남았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계룡시 두마면 두계리 15 순국선열 양기하 선생 생가터 표지판을 찾았다.
독립운동가 양기하(梁基瑕) 장군 생가지(生家址) - 위치 : 충남 계룡시 두마면 두계리 15번지
양기하(1878.10.8~1932.2) 장군은 이곳 계룡시 두마면 두계리 15번지에서 출생하셨으며, 공주군수로 재직하던 중 1910년 8월 경술국치를 당하여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군을 양성하셨고, 1919년 3월 대한독립단을 조직하여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하셨다. 그 후 광복군사령부 정보국장으로 항일투쟁을 하시던 중 상해임시정부 의정원 의원으로 독립외교활동을 지원하셨다. 또한 1922년 10월 김구 선생과 "노동하며 군인이 되는" 한국노병회를 결성하여 독립군 양성과 군자금 모금에 주력하셨다. 1930년을 전후하여 조선혁명군을 조직하여 항일무장 투쟁을 전개하던 중 1932년 2월 만주 관전현에서 일본경찰대와 만주군의 습격을 받고 격전 중 순국하셨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2016년 12월 20일 계룡시장
양기하(1878.10.8~1932.2) 장군은 이곳 계룡시 두마면 두계리 15번지에서 출생하셨으며, 공주군수로 재직하던 중 1910년 8월 경술국치를 당하여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군을 양성하셨고, 1919년 3월 대한독립단을 조직하여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하셨다. 그 후 광복군사령부 정보국장으로 항일투쟁을 하시던 중 상해임시정부 의정원 의원으로 독립외교활동을 지원하셨다. 또한 1922년 10월 김구 선생과 "노동하며 군인이 되는" 한국노병회를 결성하여 독립군 양성과 군자금 모금에 주력하셨다. 1930년을 전후하여 조선혁명군을 조직하여 항일무장 투쟁을 전개하던 중 1932년 2월 만주 관전현에서 일본경찰대와 만주군의 습격을 받고 격전 중 순국하셨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2016년 12월 20일 계룡시장